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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된 안식일 - 1부
누가복음 4:
워싱턴 DC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미국의 수도 관광을 위해 방문하는 친구와 친지들을 대접하는 것을 매우 기뻐합니다. 항상 관광 리스트 상단에 위치하는 관광지는 워싱턴 기념탑과 링컨 기념관 그리고 제퍼슨 기념관과 같은 기념탑과 기념관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워싱턴 기념탑을 올라가다가 "링컨 기념탑" 또는 "제퍼슨 기념탑"이란 표시를 보게 되면 어떠한 혼란을 느끼게 될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무슨 일인지 알려고 할 것이고 "변경됨"이란 단순한 답변을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 누가 그렇게 했는지 알려 할 것이고 그 변경에 대한 의회의 공식 문서 같은 것을 보려 할 것입니다. 그 외는 어떤 것도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난 세 번의 방송을 통해 우리가 토론해 온 안식일에 대한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주장합니다만, 언제, 어디서 변경이 이루어졌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경이 예수님이나 최소한 신약의 기자들인 그 분의 제자들 이외의 다른 주체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효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에 대해 뭐라 말하나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요일에 어떠한 영적인 의미가 주어진 게 있을까요? 이제 알아 봅시다.
지난 번 방송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사역의 시작에서 끝까지 안식일 준수의 모본에 대해 토론했었는데요. 금요일 오후 나자렛 거리를 걷다 보면, 예수님과 요셉이 서녘에 해가 지면서 목공소 안에서 바삐 물건들을 정리하고 문을 닫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안식일 준수의 모본이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4:16을 읽은 기억이 있으실 텐데요. 오늘 성경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그 내용을 몇 가지 복습해 보겠습니다. 먼저, 안식일은 유대인이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사람에게 주어졌었지요? 안식일이 창조 주간의 일부였으니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대리자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십계명을 읽고 사람이 잊어버린 계명이 하나님께서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계명이라는 사실과 십계명이 하나님의 친수로 쓰신 성경의 일부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제, 우리가 처한 딜레마는 너무도 명료해서 오해할래야 오해할 수 없는 성경의 내용이지만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부활 후에도 기독교계에 두 진영, 즉 주일의 첫날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날이라고 믿는 진영과 일곱째 날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라고 믿는 진영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느 편이 맞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우리는 특정 교회가 가르치는 바와 관련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권위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도움, 안전, 우리 믿음에 대한 기초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리고 "기록되었으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배일로서 주일의 첫날은 기독교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왔습니다만,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왜?"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거기엔 이유가 있어야겠지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의 일곱째 날이 아닌 다른 날을 지키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려면 우리의 믿음에 대한 권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이 맞다면, 성경에서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날을 제쳐 놓은 이유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논리적이겠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일요일이 기독교회에서 자리를 잡은 근거를 잠깐 조사해 보는 것입니다. 주일의 첫날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찾아보도록 하죠.
"안식일" 그리고 "예비일"을 제외하고 성경은 숫자 만 사용하여 주일의 날들을 지정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일요일"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시작하는 책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데요. 일요일 준수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지요. 첫 번째 부분은 창세기 1:5인데요. 물론, 이 구절은 창조 주간에 대한 설명입니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라는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구절은 그 날이 거룩하다거나, 신성하다거나, 경배일로 구별해 놓았다거나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표현이 없으며 그저 창조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한가지 중요한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요, 그것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성경상의 날은 저녁 또는 해질녘에 시작됩니다. 창세기 1장을 읽다 보면, 우리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는 등의 표현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상의 날은 일몰 시에 시작되죠. 우리는 여기서 주일의 첫날을 경배일이나 다른 날로 인가하셨다는 어떠한 말씀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제 주일의 첫날을 언급하고 있는 신약의 구절들을 살펴 봅시다.
이러한 기독교 관행에 대해 주께서 가라사대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기에 예수님의 경험을 통해 주일의 첫날에 대해 신약이 말하는 바를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8:1~2입니다.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여러분은 이 구절이 우리 주님의 부활 주간 말미에 있어났던 십자가형에 대한 설명임을 금세 알 것입니다. 이것은 발생한 사건들을 단순히 마태가 설명한 내용입니다. 사을 이 구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지만,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라는 대목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안식일과 주일의 첫날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에 나오는 주일의 첫날에 대한 첫 언급이지만,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좋습니다. 계속 해 보겠습니다.
마가복음을 볼까요? 여러분은 다음 몇 개의 언급이 이 동일한 십자가형 부활 주말에 대한 비슷한 설명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2의 말씀입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이 구절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지는 않고 단순히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같은 장 9절의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인 설명을 보게 되는데 아무 것도 한 날을 다른 날보다 위에 두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단지 이 날이 예수께서 일어나신 날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을 뿐입니다.
다음 복음서의 설명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3장과 24장입니다. 누가복음 23:54~56을 먼저 볼까요?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이 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로 주일의 여섯째 날, 즉 우리가 금요일로 부르는 날입니다. 물론, 기독교계에서는 성 금요일이라고 하지요.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다음 구절은 누가복음 24:1입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여기서 우리는 주일의 첫날이 신성함을 말해주는 것을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는데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셨던 안식일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제자들이 주일의 일곱째 날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구실이 있었다면, 그들은 여기서도 구실을 댈 수 있었을 것임이 논리적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형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그 분께서는 무덤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시체는 매장할 준비가 될 필요가 있었죠. 분명히 그들은 안식일 준수에 대해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이 거의 다 되면서 집으로 돌아가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주일의 첫날이 거룩하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요한의 설명으로 가 볼까요? 이것은 복음서 중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20:1입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여기에는 중요한 내용이 없으니 19절로 가보겠습니다. 주목하세요.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제 여기에 우리 주님의 부활 후 신약에 나타난 주일의 첫날 모임에 대한 기록이 있네요. 여기서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요. 여기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있었습니까? 여러분들은 그럼요!"라고 대답할 겁니다. 원문 구절이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부활을 기념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라고 되어 있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라고 되어 있어요. 그들은 거기서 부활을 축하하고 있었나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왜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신 사실 조차도 믿지 않았던 상태였어요. 그들은 새로운 경배일을 구별하지도 않았고, 부활을 기념하여 모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주인은 십자가형을 받았어요. 그들은 자신들에게도 같은 운명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다락방에 모여 있던 겁니다. 그들은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 무슨 일이 벌이지고 있는 거지?"하면서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 장을 읽으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에 자신이 무덤에서 일어났음을 설득시키셨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은 놀라서 귀신을 본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절에서도 일요일의 신성성이라든가 거룩하게 지켜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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