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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1부
창세기 1:5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 안에 쓰인 안식일이라는 놀라운 주제에 대해 몇 일간 이야기해 왔습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사실에 여러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합니다. 여기네요. 그리스도와 그 분의 제자들은 수 백 번의 설교를 하고 수 백 번의 성경연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나 제자들이 우리에게 주일의 첫날을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 성경상의 언급을 단 한 번도 찾을 수 없을 뿐 더러 그리스도나 제자들이 그 날을 거룩한 날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내용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야 할 특별하고 거룩한 날로 믿고 있지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아주 훌륭한 신학자, 학자,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교리와 사람이 만들어낸 거룩한 날에 만족하는 것은 참으로 생각하기 어렵고,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여기에 현대 종교생활에서 가장 큰 기만 중 하나가 숨어 있는데 그 이유는 일요일을 지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이 성경의 권위가 뒷받침된 걸로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대한 구절이 성경에 한 줄이라도 있다면, 저도 알고 싶군요. 여러분도 그 구절을 찾기 원하실 거라 확신합니다. 저는 지금 이 말씀을 진정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그 구절이 있다면 발견할 때까지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 아시는 분이 계시면 제게 편지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것을 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으로 따르고 순종하고 싶으니까요.
이것을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는데 그것은 주일의 첫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성경상의 모든 구절을 읽고 조사하는 것입니다. 주일의 첫날이 거룩하다고 말하는 곳이 하나님의 책에 있다면, 우리는 일요일 또는 주일의 첫날에 대해 언급하는 모든 구절들을 읽음으로써 그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런 내용을 다루어 보려 하는데요. 어떤 사람은 글쎄요,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꼭 그렇진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일요일에 대해 말하는 구절은 이 백 군데가 되지 않아요. 오십 군데도 안 되요. 실상은 열 군데도 안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성경의 끝에서 끝까지 주일의 첫날에 대해 말한 구절은 아홉 군데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구절들을 읽고 연구할 때 아주 주의 깊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어 아주 많은 것들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확신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그 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요청 드리는 이유입니다.
주일의 첫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번 째 성경 구절은 성경의 첫 번 째 책의 1장 5절입니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제 첫 번 째 질문입니다. 이 말은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 주일의 첫날이 거룩한 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 그것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낫겠네요. 이 구절이 구약을 통틀어 주일의 첫날에 대해 언급한 유일한 구절임을 상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신약으로 와서 마태복음에서 한 구절 읽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8;1~2입니다.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여기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언젠가 사람들이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암시가 있나요? 물론, 없습니다. 조그마한 힌트도 없어요.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신 것이 주일의 첫날이라는 것을 단순히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6:1~2의 말씀입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첫 질문에 대한 답은 쉽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주일의 첫날이 거룩한 날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지적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있네요. 이 구절은 주일의 첫날이 왔을 때 안식일이 지났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안식일이 지나서 그들이 주일의 첫날 향품을 가지고 왔다"고 말합니다. 혹시 어떤 사람이 주일의 첫날을 "안식일"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분명히 있으실 겁니다. 라디오 설교에서도 수없이 그렇게 말할 뿐 더러 일요일 아침 교회에서도 들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이 아름다운 안식일 아침에 함께 해주셔서 아주 행복합니다"라고 말이죠. 하지만 여러분! 마가복음 16:1~2의 권위로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주일이 첫날이 왔을 때 안식일이 이미 지나갔다고 명명백백하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주일의 첫날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주일의 첫날을 안식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네 번 째 성경 절로 가볼까요? 마가복음 16:9의 말씀을 보시죠.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여기서 이 절은 그 날이 거룩하다고 말하나요? 아니면 앞으로 그 날이 거룩하게 지켜질 것이라는 힌트라도 주고 있나요? 아닙니다. 결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주일이 첫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만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지요.
누가복음 24:1~3으로 넘어 갑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여기서도 우리가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아무 것도 찾지 못했지만, 기회가 많이 남아 있고 필요한 모든 것은 딱 한 구절이면 되기 때문에 크게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일요일을 지킬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성경상의 언급 한 군데만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한 구절이면 충분합니다.
여섯 번 째 기회는 요한복음 20:1~2에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지금까지 4복음서를 이 정도 읽었으면 기자들이 일요일 아침 부활절에 대해 최소한의 언급을 했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 날이 거룩한 날이라고 말하는 곳도 없고, 안식일이 주일의 첫날로 변경되었다는 암시도 전혀 없네요. 이상합니다. 이제껏 아홉 구절 중 여섯 개를 살펴 봤는데 아직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세 번의 기회가 남아있으니 계속해서 주의 깊게 살펴 봅시다.
주일의 첫날에 대해 언급한 일곱 번 째 구절은 요한복음 20:19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몇몇 사람들은 "아! 여기 있군요. 바로 이겁니다.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걱정이 안 됐었는데요. 당신이 읽기 원하던 게 바로 이 구절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날을 계기로 주일의 첫날이 거룩한 날이 되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부활절 모임을 갖고 있었다고 말해 주는 성경절이 바로 이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설교를 들어 보셨겠지만,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뜻일까요? 이 구절에서 제자들이 주일 첫날의 준수가 개시되었음을 알리기 위하여 부활을 기념하여 모였다고 말하고 있나요? 물론, 아니지요.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제자들이 모인 곳에" 뭣 때문에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이제 우리의 신앙을 올바르게 유지합시다. 성경은 그들이 부활을 기념하여 새로운 거룩한 날을 시작하기 위해 모임을 갖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두려웠기 때문에 거기 모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두려울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취했다면, 분명히 제자들도 죽이려 할 테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이 방에 모여 문을 닫았습니다. 그들은 문에 빗장을 지르고 아마도 창문 셔터도 내리고 "우리가 다음 차례일지도 몰라"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거기 모인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저도 그걸 믿어요. 저도 그들이 두려웠기 때문에 거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두렵긴 했지만 부활을 기념하여 주일의 첫날을 거룩한 날로 지키는 전통을 만들기 위해 거기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전 그 말을 수없이 들어 왔습니다만, 솔직히 말씀 드려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여러분께 한가지는 약속 드리죠. 그 말은 성경에는 없습니다. 성경은 그 반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구절을 읽어 봅시다. 마가복음 16:14의 말씀입니다. 얼마나 명료하고 분명한지 주목하세요.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여러분! 이 구절이 가르치는 바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구절은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있을 때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것을 믿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성경이 당시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도 않았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는데도 남녀노소는 물론, 신학자들까지 어떻게 주일의 첫날 있었던 이 모임이 거룩한 날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부활을 기념하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여자들은 그들에게 말했지만, 그들은 "우리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지요. 그리고 나중에 성경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나무라셨다고 말합니다. 그 분께서는 그들에게 이야기가 전달됐는데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그들을 책망하신 것이지요. 이 구절은 주일의 첫날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두 구절만 살펴 보면, 주일의 첫날을 지키는 것과 관련된 모든 성경상의 근거여부를 조사하는 일이 모두 끝나게 됩니다.
나머지 두 구절은 내일 살펴 보려 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주일의 첫날을 거룩하게 지킬 권위나 정당한 이유를 부여하고 있다면, 이 두 구절에서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성경에서 없어진 구절을 찾는 이 흥미로운 작업이 끝나는 내일에도 채널을 맞춰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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