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십년 간 많은 사람들이 태음력 안식일 계산 문제를 제기하려고 그들이 알고 있는 데이터를 갖고 내게 왔다. 이 새롭고도 흥미로운 이론은 7일 주간이 각 월삭 후에 재설정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결과, 안식일은 항상 한 태음월의 8일, 15일, 22일과 29일과 겹치게 된다.i) 지난 수년 간 이러한 견해를 조장하는 광고 캠페인이 대규모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그로인해 오늘날 많은 이들은 일반적으로 토요일도 아니고 일요일도 아닌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 내가 "일반적"이라고 한 것은 사람들이 매월 다른 날에 안식일 지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는 전세계의 달력상 안식일부터 다음 안식일까지 7일이 있지만 이 이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29일 안식일과 다음 8일 안식일 사이에는 8-9일이 있다. 이는 매월 "주간들" 사이에 1-2일의 "월삭" 날들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본인은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 지은 바 있다. 그 중 여러 부분은 추측 또는 추론에 근거하거나, 억지이거나, 독창적이지 못하다. 성경적으로 접근하든지, 아니면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하든지 간에, 이러한 생각은 세밀한 조사를 이겨내지 못했다.
여러가지 주장
먼저,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성격을 요약해 보자.
1. 안식일이 3개의 성경 월(출애굽과 시작된 3개월)의 15일과 연속으로 겹친다고 한다. 월간 주기가 29.5일에 불과하기 때문에, 안식일이 태음력에 기초하지 않는 이상, 안식일은 세번 연속 15일과 겹칠 수 없다.
2. 성경상 어떤 안식일도 태음력 주기의 8일, 15일, 22일 또는 29일이 아닌 다른 날에 나타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레고리우스형 안식일의 약 15%만이 날들과 겹치기 때문에 이는 태음력 안식일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3. 또한, 태음력이 구약의 축일들을 결정하는데 필수불가결하다는 주장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유효한 월력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월력이 축일 결정에 맞는 것이라면, 안식일도 축일 사이에 있기 때문에 안식일 결정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4. 아울러, 고대 정부당국은 7일 주간의 원천을 바빌로니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유대인들은 태음력으로 안식일을 지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유대 관습은 로마에 의해 변경됐고 그레고리우스력에 나타나 있듯이 유대인들이 오늘날 토요일을 지키는 이유가 됐다는 것이다.
5. 정황증거는 여호수아, 솔로몬, 히스기야, 그리고 바울 시대의 태음력 안식일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6. 월삭은 "평일"로 치지 않으며, 따라서 월삭의 각 주간 주기에는 6개의 평일이 있다.
태음력 문서 여기 저기에 다른 생각들이 나타나 있지만, 이런 생각들은 본인이 읽었던 문서들에 반복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들이다. 이 문서들에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은 월삭이 주간 주기에 방해가 되지 않음을 가르쳐주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라는 말이다.
증거
위에 6개 주장 중에서, 본인이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것은 두번 째 주장이다. "안식일"이란 말은 성경에서 100번 이상 나온다. 언뜻 생각할 때, 이러한 안식일 중 한 안식일이 어느 한 달의 2일, 3일, 4일, 5일, 6일, 7일, 9일, 10일, 11일, 12일, 13일, 14일 등과 겹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태음력 안식일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 몇 가지 사실이 있다:
날과 월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정확한 특정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계명의 안식일을 언급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참고: 출 20:8-11; 신 5:12-15; 출 31:14-16; 출 35:2-3; 레 24:8; 민 28:9-10; [느 9:14]; [역대상 9:32]; 시 92:1; 암 8:5; 렘 17:21-27; 이 56:2, 6; 이 58:13; 마 24:20; 요 7:22-23; 골 2:16
성경에는 안식일을 가리키는 이야기가 20곳에 나오지만, 한 달의 어느 날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참고: 느 15:32; 왕하 11:5-9, 대하 23:4-8; 왕하 16:18; 느 10:31; 느 13:15-22; 마 12:1-12, 막 2:23-3:4, 눅 6:1-9; 막 1:21; 막 6:2; 눅 4:16; 눅 4:31; 눅 13:10-16; 눅 14:1-5; 행 1:12; 행 13:14-44; 행 15:21; 행 16:13; 행 17:2; 행 18:4; 요 5:9-18 ; 요 9:14-16 .
성경에는 태음월의 한 날과 관련하여 확실하게 날짜를 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안식일을 언급한 구절이 딱 두 군데 있다. 그것은 만나를 처음 내려주셨을 때와 예수님의 죽음 및 부활과 관련된 부분이다.
참고: 출 16:23-29 마 28:1; 막. 15 42; 16:1; 눅 23:54-56; 수 19:31.
성경 구절에서 안식일에 관한 날짜를 추정할 수 있는 구절은 몇 개나 되는가? 2개이다.
이 사실은 처음 두 주장을 중립적으로 만든다.
(부록 I에서는 태음력과 주간의 날들 사이의 날짜를 추정할 수 있는 상관성을 가진 것으로 주장되고 있는 다른 구절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세번째 포인트에 관해서는, 유대인의 축일이 유대인의 태음력에ii 기초해 계산되었음이 성경상 확실히 맞다.
하지만 "당해 연도의 날짜를 연력으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주간의 날짜 역시 그렇게 계산해야 한다"는 외삽법(extrapolation)은 근거가 없다. 어떤 선지자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역사도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오늘날 무슬림은 태음력을 사용하지만, 지키던대로 주간을 지킨다. 연속적인 주간 주기가 성경적으로 일관성이 없다는 주장은 완전히 추측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말하기 위한 정중한 방법일 뿐이다.
네번째 포인트는 엄밀히 말해 성경적이지 못하다. 역사가 잘못된 것이다. 사실은 바울의 시대부터(사도행전에서) "각 성"에는 안식일에 토라를 읽던 유대인들이 있었다.
행 15: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더라.
유대인들은 로마가 일어나기 오래 전에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의해 흩어졌다. 그들은 페시아, 그리고 로마에게 복속되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이제 이 점을 생각해 보라: 증명하기에 충분한 역사적 증거 없이, 안식일 준수방법을 바꾸도록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동시에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무엇보다도 , 1세기 동안 알려진 세계 곳곳에 복음이 전파되었다.
골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태음력 주간을 믿는 사람들에 의하면, 사도들이 인도, 이디오피아, 그리고 영국제도로 여행했을 때, 이들 지역에서 태음력 안식일 준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들 지역은 3세기까지 로마의 영향력 하에 있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로마가 제칠일 안식일을 금지시킨 이후 그들이 수세기 동안 이를 준수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전세계 기독교인들, 신실한 안식일 준수자들이 역사에 나타나지 않고, 그들의 예배일을 변경하도록 설복 당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안식일에서 일요일로의 변경은 역사에 많이 나타나 있으며, 바로 그 출현에 의해 다른 변경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다섯번째 포인트는 정황이다. 만일 누군가 복잡한 추정에 의해 그 이야기가 그 달 그 날에 발생했음에 틀림이 없다고 결론 짓는다면, 그 결론은 의심의 여지가 있다. 요한복음 9장에 관한 각주를 참고하라.
더욱이, 우리는 실습에 대한 관찰사항을 명령으로 바꾸는 것을 원치 않고, 실습에 대한 간결하고도 직접적인 명령을 원한다. 그리고 그러한 명령은 태음력 안식일 이론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자세하게 조사되어 있는 부록에서 볼 수 있듯이, 관찰내용 자체가 잘못된 경우들도 있다. 우리가 정황 증거들을 인정한다면, 다음 구절에서처럼 그 달의 첫 날이 거룩한 것으로 취급되지 않았음을 보게 될 것이다.
창 8:13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 날 땅 위에서 물이 다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겅을 제치고 바깥을 내대보니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민 1:1 둘째 달 초하루에 주님께서 시내 광야의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각 가문별, 가족별로 인구를 조사하여라.
에스겔 7:9 그가 바빌로니아를 떠난 것은 첫째 달 초하루이다.
태음력 안식일에 대한 짧은 증거 목록에서 여섯번 째 포인트는 에스라서의 단일 절에 기초한다:
에스겔 46:1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안뜰의 동쪽 중문은 일하는 엿새동안 잠가 두었다가 안식일에 열고, 매달 초하루에도 열어야 한다.
추론은 다음과 같다: 중문이 일하는 엿새동안 닫혀있다가 매달 초하루에 열린다면, 그 초하루는 일하는 엿새 중 하루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초하루는 일하는 엿새 중 하루가 아니기 때문에 주간의 일부가 되어선 안 된다.
오류는 초하루가 주간의 여러 날예 일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절이 쓰기에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방식이라는 사실에 있다. 태음력 안식일의 옹호자들이 하는 추론은 근거가 없으며 억지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기쁘게 주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구절을 읽고 하나님은 마지 못해 주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결론 짓는 것과 성격상 유사한 것이다.
성경은 간결하고 잘 쓰여졌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추론 방지를 위해 더 상세한 사항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시되"라고 요구해야 한다.
요약과 문제해결
태음력 안식일에 대한 6개 증거 모두 조사를 해보면 답이 나온다. 그렇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보다 실질적으로 해결해 주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들을 살펴보자.
1. 짐승의 표와 하나님의 인과iii 관련된 사실들은 그 문제가 성경에 기초해 해결하기 쉬울 것을 요구한다. 단순한 사람들은 그들이 옳다는 사실에 그들의 삶을 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태음력 안식일 이론은 명령이나 단순한 진술로 추적하여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복잡하며, 이 자체가 그에 관해 뭔가 냄새가 난다는 징표인 것이다.
2. 첫 주간은 달이 빛을 내기 시작하기 전 창세기 1장에서 시작됐다. 이는 주간이 항상 태음력 사이클과 무관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3. “7주”는 표준 달력으로 49일이어야 하나, 태음양력으로는 51-52일이 될 것이다. 레위기 23장과 다니엘 9장은 “7주”가 49일임을 확실히 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태음력 안식일을 인정하지 않는다.
4. 1260년(538 AD to 1798 AD)에 대한 예언은 주간의 성격을 바꾸기에는 그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iv. 로마제국의 민간 통치자로 세워졌을 때, 교황권은 안식일 준수에 대해 역사적으로 문서화된 공격을 시작했다. 그 공격은 안식일과 관련해 결국 인도에서 이디오피아로, 그리고 다시 아일랜드로 그 준수 방식을 바꿨다. 같은 기간동안 유대인들은 여러 교황권 국가들 도처에서 안식일 준수를 견지했다.
결론
주간은 태양과 달의 시간 유지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계수되고 있었다. 결혼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에덴동산에서 비롯되었다. 항상 신실한 안식일 준수자들이 있었다. 요한계시록 11장의 성취로 하나님의 율법에 빛이 비취었을 때, 안식일 진리는 지구상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시되었다.
태음력 안식일이 만들어낸 혼동은 분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연속 3개월 그리고 15일, 22일 등 성경상의 모든 안식일"에 관한 주장은 오해와 추측일 뿐이다.
그러한 일로부터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 주어진 은사는 경멸을 받아 왔다. 그리고 태음력 안식일 준수에 대해 "주께서 이 같이 말씀하시되"라는 구절이 요구되어야 한다. 그것은 만든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단체는 태음력 안식일의 성경적 논박에 대해 상당한 보상을 제공해 왔다. "하나님의 자비로, 선지자와 사도들의 저술에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 그것을 확신하는 순간 모든 실수를 원자리로 돌리겠다"는 루터의 인용이 그러한 제공에 더해졌다.
이것은 존귀하고도, 누구나 다 취할 수 있는 쉬운 입장이 아니다. 이것이 태음력 안식일 주의자들의 의사 역사학(pseudo-history)으로 인해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들의 진실한 입장이 되었으면 한다.
부록 - 역사상 태음력 안식일의 증거로 사용된 구절들에 대한 설명
누군가 내게 와서 내 처가 간통죄를 지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그것을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 고소인이 "그녀가 죄를 지었다는 증거를 10개나 있다"고 말한다고 상상해보라. 나는 그 증거를 보고 싶을 것이다. 이제 그가 증거를 대기 시작한다. “첫째, 나는 사진 속에서 당신의 아내가 데이비드 영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봤다. 둘째, 나는 당신의 아내가 현관에서 누군가에게 "부부,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셋째, 나는 그녀가 자카리 하비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사랑한다는 내용의 텍스트 메시지를 봤다. 넷째, 당신의 집 위층에 침대와 베개들이 있는 것을 봤다."
나는 그를 제지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의 첫번 째 주장이 들을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전체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데이비드 영은 그녀의 오빠이고 자카리는 그녀의 조카이다. 부부는 요키와 치와와의 잡종 애완견이다. 그리고 집 이층의 침대는 십대 조카들을 위한 손님용 침대이다.
누군가에게 기다란 주장 리스트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들이 정확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그들의 주장을 확고하게 관철시킬 의지가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주장이 첫번 째 주장이 힘이 없다면 그 결론에 대해 고민스러워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이를 철저하게 하기 위해, 태음력 안식일의 허구성에 동조하는 일부 억지 주장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제공된다.
일부 연구에 의하면, 출애굽기 12장은 15일 주간 안식일의 예라 할 수 있다. 그 주장은 다음과 같다: "누룩을 넣지 않은 빵 축일의 첫날은 15일 안식일이었다(레위기 23: 4-16). 이로 인해 정월(Abib) 안식일은 8일, 22일 그리고 29일과 겹쳤다.”
그러나 레위기 23:4-16을 보라. 구체적으로는 7-8절이다. 그것은 첫날을 안식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축일의 일곱 째 날을 안식일로 만든다.
첫날, 당신은 성회를 가져야 한다. 당신은 육체노동을 해선 안 된다. 그러나 당신은 불로 만든 제물을 주께 드려야 한다. 일곱 째 날은 성회이다. 당신은 그 날 육체노동을 해선 안 된다.
7절과 8절이 증거하는 바는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을 포함한 모든 의식적 성회가 주간 안식일과 서로 결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 칠월에 따로 7일 성회(?) (15일과 22일)가 있다는 사실은 정월에 성회가 단 6일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볼 때 그 중요성이 없어진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출애굽기 19장은 안식일이 태음력과 서로 잘 결부되는 달의 한 예이다. 주장은 이렇다: "이스라엘은 아빕월 15일밤 애굽을 떠났다. 세 달 후, 바로 같은 날, 15일, 그들은 시내산 앞에서 쉬었다. (신명기 16:1; 민수기 33:3; 출애굽기 19:1-2.)”
그러나 해당 구절을 읽을 때 15일과 16일은 17일 주와의 만남을 위해 정결케 하고 준비하는 날이었음을 알게 된다. 안식일을 위해 이 세 날 중 하루를 선택해야 한다면 17일이 나을 것이다.
주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너에게 나타날 것이니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이 듣고서 그들이 영원히 너를 믿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백성이 한 말을 주께 아뢰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이틀동안 그들을 성결하게 하여라. 그들이 옷을 빨아 입고서 셋째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여라. 바로 이 셋째 날에 나 주가 온 백성이 보는 가운데서 시내산에 내려가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날에서 안식일을 정할 데이터는 충분치 않다. 이 주장은 독자로 하여금 성경이 15일을 "휴식"과 결부시킨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지만, 해당 구절은 오히려 15일을 "장막을 치는 것"과 결부시킨다. 준비일로서 15일과 16일은 안식일로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한 연구는 레위기 23:15-16을 태음력 안식일의 증거로 언급한다. "레위기 23:15-16은 성령 강림절이 셋째 달 9일, 주간의 첫날 일어난다고 말한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즉 그 달의 9일이 항상 그 주간의 "첫날"이라면, 그것은 태음력 안식일 준수에 대해 아주 강력한 주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레위기 23:15-16, 그 문맥, 그리고 성경 전체를 읽어 보면, 이 주장에서 언급된 생각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성령 강림절이 셋째 달 9일과 겹친다고 말하는 구절은 없다. 여기 그 구절이 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일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주께 드리되."
이제, 두 구절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제 칠일 안식일 + 하루는 "오십일"이다. 그것은 일곱 개의 완전한 주(첫날부터 안식일까지) 더하기 추가적 첫날이다. 그것은 연속 주기로 정확히 50일이다. 그러나 그 안에 두 개의 새 달(moons)을 넣으면 갑자기 52일이 된다. 사실상, 레위기 23:15-16은 태음력 안식일에 반하는 중요한 증거이다.
한 연구는 첫달 16일 만나가 내리기를 그친 사실에서 태음력 안식일의 증거를 찾는다. 그러나 여호수아 5:10-12는 15일이 안식일이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15일이 진정 안식일이었다면 만나가 마지막 내린 날은 15일이라기보다는 14일이다).
동일한 연구는 8일이 안식일이라는 증거가 출애굽기 40:2, 17에 있다고 말한다. 그 주장은 이러하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정월 초일일에 시작해 칠일 간 정결함을 입었다 (출 40: 2, 17 참조). 8일(그 달의 8일), 성회가 있었다. 앞선 칠일 동안, 그들은 회막을 떠나면 안 되었다."
따라서 안식일의 증거는 8일의 "성회"에서 찾을 수 있다.
출애굽기 40:2, 17는 어떤 사실을 보여주는가? 그것은 주간의 첫날이 성막의 건축일이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그 장의 나머지는 모세가 성막을 지으면서 쏟은 엄청난 양의 육체노동을 보여준다.
"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제 이 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제사장들은 한 주 동안 정결함을 입었다. 제칠일 안식일을 이야기에 넣어야 한다면, 가장 좋은 자리는 그들이 성막에 머물렀던 일곱째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조차도 억지이다. 진실은 이 이야기(레 8-9)가 제칠일 안식일의 발생시기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 칠월 22일은 항상 초막절의 마지막 날 성회일이어야 했다. 따라서 솔로몬이 역대하 7:8-10에서 그와 같이 초막절을 지켰을 때, 그것은 성회가 제칠일 안식일과 일치했는지의 여부에 대해 추가적인 빛이 되지 못한다.
일부에서는 제 십이월 15일의 안식일에 대해 에스더 9장에서 증거를 찾는다. 그러나 그 구절은 14일과 15일이 특별한 날로 지켜졌음을 나타내며, 따라서 그 구절은 14일이나 15일, 또는 양일 모두 제칠일 안식일이었는지의 여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못한다.
히스기야 이야기는 뜰과 성전을 청소하던 16일을 묘사한다. 8일 그들은 회당에서 시작해 16일 끝냈다. 하지만 제칠일 안식일의 위치에 관한 증거는 여기에 없다. 몇몇 날이 거룩하게 지켜졌다면 그것이 8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요한복음 9장에서 소경을 고치신 것이야 말로 제 칠월 22일 안식일의 증거로 여겨진다. 주장은 이렇다: “예수께서 명절에 올라가시되(요 7:10.) 명절 끝날 곧 제 칠월 21일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요 7:37.) 예수께서 감람산으로 가시다. (요 8:1.) 제 칠월 22일 아침에 아 침에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시니. (요 8:2.) 성전에서 예수께서는 소경을 고치셨다. (요 9:6.) 그 날이 제칠일 안식일이었으므로 소경을 고치심로써 공분을 샀다. (요 9:14.) 이는 다시 한번 주간 제칠일 안식일을 그 달의 8일, 15일, 22일, 그리고 29일에 위치시킨다.”
요한복음 8:1은 제 칠월 21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날이 요한복음 9:14과 같은 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이다. 요한복음 8:2에서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기는 했지만, 59절 뒤인 9:1에서는 길을 가고 계신다. 요한복음 11:55에서는 이미 유월절까지 와 있다. 8:2와 9:1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요한복음 9:6에서 그 사람이 성전에서 고침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같은 날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요한복음 18:20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었거늘."
사실은 우리가 요한복음 8:1-2의 날짜를 알고 있다고 하여도 요한복음 9장의 날짜를 알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9:6은 성전에 있던 소경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바울의 여행은 안식일의 태음력 계산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추론은 이러하다: “그들이 드로아에서 머물던 일곱째 날은 바울이 주간의 첫날로 언급한 그 달의 둘째 날이었다." 따라서 주간의 첫날이 태음력 월의 둘째 날이라면, 그 달은 태음력과 부합한다.
문제는 수학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날을 합해 셈하는 경우(유대인들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21일 빌립보에 있었다. 이 구절을 단순하게 읽으면, 그들이 22일(태음력 안식일 계산에 반하는 주장)에 여행한 것같이 보인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몇 일 후"는 "바로 후"를 의미할 수도 있고, "얼마 후"를 의미할 수도 있다. 만일 내가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세려고 엄마 집에 있다가 그 다음 몇 주를 집에서 보냈다"고 한다면, 그것은 목요일 오후, 금요일 오전, 또는 일요일 정오에 집으로 차를 몰고 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행사가 주로 태음력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행사를 계획할 때, "주간의 첫날"이 태음력의 셋째 날에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된다.
1 유월절 여행 기간 동안, 특정 일은 특별하게 명시되지 않았다.
2 일부 태음력 안식일 주장자들은 요한복음 9장을 15일 안식일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이는 요한복음 7장의 초막절에 근거한다. 그 주장은 축일 후 아침 예수께서 성전에 가셔서 소경을 만나셨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8:1은 제 칠월 22일로 보인다. 그러나 요한복음 9:14이 같은 날이라고 말하는 것은 억지이다. 예수께서는 8:2에서 성전에 들어가셨지만 59절 뒤인 9:1에서는 길을 가고 계신다. 11:55에서 당신은 이미 유월절에 가까워지고 있다. 날을 나누는 구절들은 복음에서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i. 만일 태음력 안식일 이론의 토픽이 생소하다면, 당신이 연구하고 있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배울 필요가 있는 짧은 시간 준수 용어 리스트가 있다. “태음월”은 한 월삭과 다른 월삭 사이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레고리우스 월”은 1월이나 2월 등을 의미한다. 그레고리우스 월과 력은 그 상세 사항을 명한 그레고리 교황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그레고리우스형 안식일”은 당신의 벽걸이 달력에 나오는 일곱째 날, 토요일에 나오는 안식일이다. "태음력 안식일"은 주어진 달의 월삭 7일, 14일, 21일 또는 28일 후에 겹치는 날이다.
ii. 많은 태음력 안식일 준수자들은 축일을 지키는 자들이기도 하다. 유대인의 휴일을 지키는데 문제는 없지만, 요한이 어떻게 그것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했는지 아는 것은 분별 있는 일이다. 그는 "유월절," "유대인의 축일" 그리고 "유대인이 초막절"에 대해 썼다. 요한복음 6:4와 7:2, 요한복음 2:13과 11:55을 참고하라.
iii. 만일 요한계시록 13-16에 대한 Amazing Facts의 자료들을 연구할 기회가 없었다면, 이 주장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2:17과 14:12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묘사된다. 이 세상은 이 문제로 시험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순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뭔가로 이 세상을 결코 시험하시지 않을 것이다
iv. 만일 당신이 다니엘 7:25에 나오는 이 흥미로운 예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Amazing Facts의 성경예언 시리즈를 참고하라. 그러면 중세 암흑시대에 로마 세력이 하나님의 율법을 바꾸려 했던 증거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예언은 성취되었다. 그리고 그 성취는 안식일의 가치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