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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진 “일요일” 구절 찾기

 전통이 종종 수많은 신실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권위 있는 진리를 대체하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오랜 기간 반복되어 온 진술들은 단순히 그 반복 자체로 권위의 인장이 찍혔기 때문에 마침내 승인된다. 이것은 특히 종교 분야에서 그러하다. 불행히도, 평균적인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성경을 그다지 학습하지 않는다. 그의 확신은 목사의 설명을 듣고 형성된다. 이제 설교자에게 주의를 기울이는데 아무런 잘못된 것이 없지만, 우리는 그의 설교를 성경의 엄격한 시험대 위에 올려야 한다. 이 영원한 생명의 문제는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해석에 맡겨 놓을 수 없다. 성경에서는(성경은) 우리에게 성경을 찾고 정신을 이용하라고(선한 영과 악한 영을 분별하라고) 권면한다. 베드로전서 3:15의 말씀에 주목하라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Isaiah 8:20의 말씀을 보자.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진정으로 영적인 목사라면 그의 양떼에게 자신의 메시지를(기별이 진리인지) 시험하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라고 권고할 것이다. 어떤 사람의 견해도, 가장 뛰어난 설교자의 견해조차도 아주 가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뛰어난 신학자들도 성경의 진리의 닻에서 멀리 멀리 표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설교단을 차지하고 있는 수 천명의 교회 지도자들은 성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려 왔다(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개별적으로 성경의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성경 스스로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해야 하며, 자신의 믿음과 관습에 대해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보통 교인들은 “저희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또는 “저희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는데요”라고 말한다. 자기가 영생을 위해 믿는 종교를(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결정하는 가르침을 아무런 검증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이 얼마나 놀라운가?

 세대를 통해 이어지면서 반복된 관습은 어떤 전통에 스며들어 범할(거부할) 수 없는 진리처럼 보이기 만든다(보이게 된다). 일부 아주 보편적인 종교 관습들조차 성경에 그 근거가 없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래부터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잘못 인용된 성경절과 애매모호한 언급들에 대해서는 들어 왔지만, 성경의 정확한 진술은 빠져 있다. 이와 같은 가장 이상한 사례 중(같은 사례들 가운데 가장 이상한 것 중에)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일요일 준수이다. 주일의 첫날 준수와 관련된 성경 구절이 없다는 사실은 오랜 기간에 걸친 탐구와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일요일 준수에 대해 아무런 성경상의 근거가 없다는 것은 주요 성직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십계명은 경배와 휴식을 위해 한 날을 별도로 구분해 놓았지만, 그 날은 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이 아니라 일곱째 날인 토요일이다.  출애굽기 20:8-11의 말씀을 다시 한번 들어보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 말씀이 “일곱째 날은 안식일”이라고 명확하게 못 박은 데 주목하라.” 나는 모든 청취자가 토요일이 여기에 명시된(일곱째) 날이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으로 확신한다. 여러분의 집의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이 이 사실을 확인해 준다. 토요일은 주일의 일곱째 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명시하신 날과 다른 날을 지키고 있는 이 현실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스스로 성경을 찾지(연구하지) 않고 사람의 전통을 받아들이는 교인들의 한 예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과 안식일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느 날을 안식일로 지키셨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편의를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수요일을 거룩하게 지키셨다면, 우리는 같은 날을 지켜야 한다. 그 분께서 화요일 준수를 명하셨다면, 기꺼이 그 날을 안식일로 지킬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날이 어느 날인지에 대해 아는 것보다, 그 분께서 복 주시고 지키신 날이 언제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의 목적은 이 문제에 대해 진리를 찾고 어느 날이 거룩한지 확실히 알기 위해 편견 없는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말씀에 접근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날을 지키셨는가? 누가복음 4:16은 우리에게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기독교 세계가 일요일을 휴식과 경배의 날로 지키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관습에 대한 성경상의 근거를 조사할 것이다. 만약 성경이 일요일 준수를 가르친다면, 선두에 서서(적극적으로) 그것을 지켜야 한다. 어떠한 결정을 하기 전에 신약에 나오는 주일의 첫날에 대한 모든 언급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것이 유일하게(가장) 올바르고 정직한 방법이다. 일요일에 대해 언급한 곳은 성경에 단 여덟 군데가 나오는데 이 모든 성경절을 별도로 살펴 보고자 한다. 만약 일요일 준수의 권위나 근거가 있다면, 이 성경절 중 어느 하나에 나타나야 할 것이다. 

 먼저, 마가복음 16:9의 말씀을 읽어보자.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여기 주일의 첫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적 설명이 나온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안식일에 무덤 속에서 쉬셨다. 주일의 첫날, 즉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그 분께서는 무덤에서 일어나셨다(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이 구절은 ‘부활절 일요일’ 준수의 근거가 되고 있다. 마리아는 그 날 아침 일찍 그 분을 찾으러 왔을 때 그 분께서 부활하셨음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마가복음 16장 1절과 2절에 주목하라.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이 구절에서 재미있는(흥미로운) 한 가지는 일요일이 특별한 휴식의 날이 되어야 한다는 암시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주일의 첫날이 왔을 때 안식일은 지나갔으며, 안식일과 일요일이 전혀 다른 두 날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 주었다.

 이제 누가복음 23:54~56과 24:1을 펴 보자.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이것은 주일의 첫날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또 하나의 언급일 뿐이다. 여자들은 금요일 오후 예수의 시체를 보러 왔다가 집에 돌아가 실제 장례를 위해 향품을 준비했다. 그리고 다음 날, 즉 토요일에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었다”는 말씀에 주목하라. 계명에 따르면, “일곱째 날은 안식일”이므로 이 여자들은 안식일 변경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안식일이 지나갈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장례 준비를 위해 주일의 첫날 아침 일찍 무덤에 왔던 것이다. 이 말씀이(누가복음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약 35년 후에 쓰여졌기 때문에, 안식일이 변경되었다면,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아는데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안식일 준수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다면, 성령의 영감을 받은 복음서 기자들이 그 사실을 명확히(정확히 기록) 했을 것이다. 모든 복음서들이 시종일관 제칠일 안식일 준수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첫날 준수에(일요일 준수에) 대한 암시는 절대 없다고 할 수 있다.

 주일의 첫날에 대한 더 많은 언급들

 이제 마태복음 28:1에 나오는 안식일에 대한 네 번째 언급에 대해 살펴보자.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부활의 날이 왔을 때, 안식일은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잊어서는) 안 된다.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증거는 여전히 없다. 따라서 이제 요한복음 20:1로 넘어가자.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이것은 마리아가 일요일 아침 일찍 무덤에 온 것에 대한 또 다른 기록으로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다른 구절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따라서 일요일 준수에 대한 증거는 없다.

 다음은 요한복음 20:19이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구절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모임을 갖고 있었다고 잘못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사실상,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셨다는 사실을 믿지도 않았다. 그것은 주일의 첫날에 있었던(제자들이 모였던 날은) 부활 직후 일요일 오후였으며,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잠그고 모여 있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제 그들의 스승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이제 제자들이 그들의 선생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믿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성경의 몇 구절을 더 읽어보자.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마가복음 16:11~14. 따라서 제자들이 부활을 기쁘게 기념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제자들의 상황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말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고 나서야 그 분의 부활을 믿었다.

 나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시고(부활하신 후에) 주일이 첫날 제자들과 항상(항상 일요일에 제자들과) 만나셨다고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르게 이야기한다. 그 분의 출현은 요한복음 20:14에 언급되어 있으며, 그것이 일주일의 어느 날이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그 분께서는 제자들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 오셔서 해변으로 오라고 불러(말씀하신 후에 그들과) 만나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 날이 휴식의 날이거나 거룩한 날이 아니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일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에 대한 일곱 번째 언급은 고린도전서 16:1~2에서 발견된다(찾을 수 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몇몇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교회 모임에서 정규 헌금을 거둔 기록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것은 전혀 종교적(예배를 위한) 모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음식, 옷, 그리고 돈 등의 헌물을 픽업할(운반할) 사람들을 보내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이 갔을 때 그것들을 바로 픽업할(운반할) 수 있도록 따로 보관해 놓도록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미리 당부의 말을 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그 헌물들은 기근에 빠진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다른 번역본은 “집에 따로 보관해 두다”라고 번역하고 있다는 데(것을) 주목하라. 웨이머스 역시 “벌어 놓은 모든 수익금을 보관하라”는 말을 추가하고 있다. 따라서 그 말은 장사해서 얻은 수익금에서 낼 수 있는 것은 얼마가 되었든 집에 따로 보관해두라는 의미였다. 어떤 의미에서도 종교(예배를 위한) 모임이 열렸다거나 헌금을 거두었다고 추론할 수 없다. 

 주일의 첫날에 대해 언급하고 잇는 신약의 다른 구절은 이제 한 개가 더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일요일에 열린 유일한 종교(예배) 모임이었다(집회였다). 일요일 준수에 대한 근거가 있다면, 다음 마지막 언급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구절

 만약에 일요일을 지키는 근거가 성경에 있다면(만약에 일요일 준수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정말 있다면), 이 마지막 구절을 보면서 찾게 될 것이다(이 마지막 구절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 20:7~8을 읽어 보자.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여기서 잠깐 멈춰 보자. 주일의 첫날에(일요일에) 열린 종교 모임에(예배 집회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라고 조금 전 언급했는데(언급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일요일 준수에 대한 근거가 성경에 있다면, 바로 이 부분에서 그 근거를 찾게 될 것이다(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을 주의 깊게 그리고 정직하게 살펴 보자.

 먼저, 그들은 그 날 떡을 떼었다고 한다(성경은 그들이 일요일에 떡을 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떡을 뗀다고 하는 것에 그 날이 거룩하고, 그들이 그 날을 안식일이나 거룩한 행사로 지키고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가(떡을 떼는 행위는 그 날이 거룩하고, 그들이 그 날을 안식일이나 거룩한 절기로 지켰다는 것을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사도행전 2:46  을 보면, 사도들이 매일 떡을 떼었다고 한다(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떡을 뗀 사실 하나가 그 날이 거룩한 날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결코 볼 수 없다. 만약 떡을 떼는 행위가 거룩한 날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초대교회에서는 매일 떡을 떼었기 때문에 매일이 거룩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성경절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특별한 작별 모임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하늘에서 바울을 만나기 전까지 다시는 바울을 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사도행전 20:25에서 바울이 성도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기록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마지막 모임은 그가 전도한 사람들과 함께 한 아주 아주 특별한 행사였다. 이것이 바울이 밤새도록 그들에게 강론한 이유였다. 분명, 그것은 정기 예배에서 행하던 절차가 아니다. 아무튼, 그는 한밤중까지 설교를 했다. 이 때 창에 걸터 앉아 졸던 유두고가 죽었다가 다시 사는 일이 있었고, 바울은 다음 날 동틀 때까지 설교를 계속했다.  

 이제 이 시점에서 이 질문을 해 보자. 우리가 시간을 계산하는 방식에 따르면, 이 모임은(집회는) 언제 있었는가? 성경의 날자 계산방식은 해질녘에서 해질녘까지로 한밤중에서 한밤중까지가 아니다. 우리의 방식은(현재 사용하고 있는 날짜 계산 방식은) 예수님 시대 이후 들어온(사용되기 시작한) 이교의 방식이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바와 같이, 저녁과 아침은(저녁부터 아침까지가) 하루의 원래 요소였다(원래 하루를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레위기 23:32을 참고하라, 그러면 안식일을 저녁에서 저녁까지 지켜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녁은 언제 시작되는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언제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그에 대한 답은 마가복음 1:32에서 찾을 수 있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바로 여기 있다. 저녁은 해질녘에 시작된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 더 많은 증거를 보기 원하면, 느헤미야 13:19, 여호수아 10:26 그리고 역대하 18:34를 읽어라. 달리 말해(다르게 말하자면), 그 날, 즉 안식일은 해질녘에 시작해서 해질녘에 끝났다. 그리고 일주일의 첫날도 해질녘에 시작해서 해질녘에 끝났다. 첫날은 토요일 저녁, 토요일 저녁 해질녘에 시작해서 일요일 저녁 해질녘까지 계속된다. 그것이 일주일의 첫날을 구성하는 시간이다.


 일요일 예배?

 이 구절은 그들이 모였던 모임 장소에 등불이 많이 켜져 있었다고 말하는데 주목하라. 이는 우리가 말하는 토요일 밤, 주일의 첫날의 어두운 시간에 집회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한밤중까지 설교하고 있었는데 이 때 한 젊은이가 창가에 앉아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다가 떨어져 죽었다.

 바울이 내려가 그 소년을 살린 후(살렸고), 성경은 그가 동 틀 때까지 한동안 강론을 계속했다고 말한다. 밤새도록 모임을 가진 후 일요일 이른 아침 바울은 어떻게 했나? 사도행전 21:1은 바울이 지협을 가로질러19마일을 걸어 앗소로 가서 배를 탔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거기서 그가 사람들과 합류하여 예루살렘으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정규 예배를 갖고 있던 것도 아니고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킨 것도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주간 모임이(정기적인 집회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울이 그들에게 강론하던(설교했던) 특별 예배였다. 그는(바울은) 다시는 그들을 못 볼 것이었다. 그는(바울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오래 그들과 머물렀으며 날이 밝을 때까지 밤새도록 강론했던(설교했던) 것이다. 성경이 이 이야기를 하는 주요(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울이 한밤중에 유두고라는 젊은이를 소생시킨 기적 때문이다.   
 
 이제 지금까지의 공부를 통해 다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신약에서 주일의 첫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모든 구절을 읽고 살펴 보았다. 하지만 어디서도 일요일을 휴식과 경배의 날로 신성시해야 할 명령이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한편,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가르침과 모본은(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켰던 모본은) 당시에도 안식일을 지켜야 했었고 오늘날도 지켜야 한다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안식일과 관련하여 아무런 변경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예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정해 놓으신 날에 어떠한 변경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성경 구절은 성경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바울은 어떠했는가?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은 어떠했는가? 물론, 그는 훨씬 뒤에 나왔다(예수님보다 훨씬 후에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나왔다(후에 활동했다). 그는 예수님과 다른 모든 제자들이 지켰던 것과 똑같은 안식일을 지켰는가? 그는 사도행전 17:2에서 그 증인이 됨을 알 수 있다(안식일과 관련한 바울의 행적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그것이 바울의 방식 또는 규례였다. 얼마 전(위의 글에서) 안식일에 설교하고 경배하는(예배하는) 것이 예수님의 규례라고(규례였다고) 읽었듯이, 바울 역시 규칙적으로 같은 일을 했다.  

 그는 유대인을 즐겁게 해 주거나 유대인들에게 설교를 하기 위해 유대 회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도행전 13:42~44에서 우리는 그가(바울이) 안식일에 이방인에게도 설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알게 된다).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바울이 이방인들이 일곱째 날을 제외한 다른 날을 지키기를 원했다면, 그 곳이야 말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바로잡기에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그가 안식일에 유대인들에게 설교한 후에, 이방인들은 그에게 와서 “이제 우리에게도 설교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경배의 날에 관한 한(예배의 날과 관련하여), 초대 교회에 어떤 변경이 있었다면, 바울은 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자, 내일 아침 너희에게 설교할 것이다. 그것은 주일의 첫날이 될 것이고, 나는 그날 너희와 만나 경배 드릴 것(자, 내일 아침 여러분에게 설교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일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에 함께 만나서 예배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종류의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다음 안식일에 만나 설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다음 안식일에 온 성이(성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그의 설교를 들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는 그렇게 안식일에 이방인들에게 설교했다. 사도행전 18:4과 11은 바울이 어떤 한 성에서 잇달아 78번의 안식일을 지켰다고 말한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그리고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그래서 그는 일년 육 개월 동안 장막을 만들며 안식일에 그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가르쳤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는가(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명하신 날을 바르게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먼저 우리는 안식일의 주인을 우리 가슴 속에 담아야 한다. 그 분께서 우리 안에 계시게 하기만 한다면, 이 계명들을 지키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것들은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기만 하면, 그것들은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는 사랑으로 계명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여러분이 그렇게 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성경 연구를 하고 난 후, 하나님의 은혜로 그 분이 보여주신 모본을 따라 지금 당장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로 작정하면 어떨까(결심하지 않겠는가)?

 - 조 크루스 설교 라이브러리에서 (사라진 구절 파트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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