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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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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성경에서 일요일이 주일로 기념된 일이 있는가?
  >>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칼럼  >  오만규  >  주말 휴일과 성일의 기원으로서 제칠일 안식일
 

 

 노동과 휴식에서 하나님의 방식을 모방하기
 한국의 비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현대의 주말 휴일 제도가 주간의 일곱째 날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한 구약 성경의 안식일 계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이스라엘의 한 역사가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주말 휴일 제도를 시작한 것을 유대 민족이 전체 인류에 기여한 중요한 공로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지난번의 글에서 안식일 계명의 “힘써 네 일을하라”는 명령을 다루었으므로 이번에는 안식일 계명의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명령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의 시간은 낮과 밤으로 압축되며, 사람의 생활은 노동과 휴식으로 압축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행복은 노동하는 낮과 휴식하는 밤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 계명은 사람들이 하루 중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휴식을 위해 일을 하지 않듯이 한 주간의 단위에서는 앞의 6일간에는 일을 하고 끝 날인 제7일에는 휴식을 위해 하루 종일 일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다.그런데 안식일 계명은 한 주간을 노동하는 6일과 일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일곱째 날로 구분하여 생활하는 삶의 방식이 창조 주간에 하나님이 보여 주신 노동과 휴식의 방식에 기초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사실 노동과 휴식의 개념과 경험은 모두 피조물인 인간과 동물들에게 국한된 것으로 하나님이 창조 주간을 6일의 노동과 일곱째 날의 휴식으로 보내신 것 자체가 시간과 노동의 조건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일하고 쉬는 삶의 본보기를 친히 보여 주시려는 것이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주로서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시므로 낮과 밤의 구분이나 6일과 일곱째 날의 구분이 무의미하고 하나님은 또한 전능하시므로 노동과 휴식의 구분도 무의미 할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에 천지를 창조할 수 있는 하나님에게 왜 6일의 창조 기간이 필요하며 어떤 분량의 일을 한다 해도 피곤하지 않는 하나님에게 왜 휴일이 필요하겠는가? 하나님은 오직 사람을 위해 사람의 시간과 조건 안에 들어오셨던 것이다.
 안식일의 계명은 노동과 휴식에 있어서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최초의 인간에게 노동과 휴식에 있어서 하나님을 모방하는 일은 당연히 ‘존엄하고(godlike)’, ‘경건한(godly)’ 것일 뿐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에게 자신의 본체를 흉내 내는 일보다 더 자연스럽고 기쁜 일이 무엇이겠으며, 자신의 본체를 흉내 내는 일로서는 노동과 휴식 외에 더 본격적인 것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일곱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런데 낙원에서 살던 인류에게는 그렇다 할지라도 범죄로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에게 한 주간의 삶에서 창조 주간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하심과 쉬심’의 차원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창조적이고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였지만 사람이 엿새 동안에 하는 일들은 그 마음의 소원과는 다르게 창조적이지도 못하고 고귀하지도 못한 ‘사람의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천지 창조의 작업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당연히 일곱째 날에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비록 엿새 동안에 ‘힘써’ 노력했다 할지라도 하던 일을 다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일곱째 날을 맞아야 하는 경우들이 수없이 많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6일 동안에 ‘창조적인’ 일을 ‘다 마친’ 결과와 보상으로 당연하게 제7일의 ‘아무 일도 하지 않음’과 ‘안식’을 주장할 수 없다.6일 내내 창조적이고 신성한 일을 하는 것도, 맡겨진 일을 6일 안에 완전히 완성하는 것도 인간에게는 모두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때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안식일 계명은 인간의 이 같은 한계성을 외면하고 있지 않다. 엿새 동안에 창조적이고 거룩한 일만 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대신에 일의 귀천을 불문하고 “네 모든 일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시작한 일을 반드시 6일 안에 “완성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대신에 네 일을 “힘써 행하라”고 명령할 뿐이다. 6일 동안에 수행해야 하는 일들이 비록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위임하신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힘써 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명령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힘써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일을 6일 안에 다 마치지 못했거나 심지어는 엿새 동안에 우리가 ‘힘써 행하지 못함으로써’ 우리의 일이 6일 안에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할지라도 ‘일곱째 날에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곱째 날에는 막무가내로 “아무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첫째 이유는 사람에게 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주간에 있어서 사람에게 일은 6일로 족하고 일곱째 날은 사람에게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의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의 6일 다음에 오는 제칠일을 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의 날로 삼으려면 ‘한 날의 괴로움이 그날로 족하듯이’(마태복음 6장 34절 참조)
6일의 수고도 6일로 족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여라도 ‘네 일을’ 6일 안에 ‘다 마치지 못한’ 네 책임이 ‘내일의 염려’로 계속 남아 제칠일까지 ‘네 일’의 날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염려함으로는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으므로’(27절 참조) 우리가 ‘힘써 행한’ 일의 완성을 오직 6일 안에 천지 만물을 다 이루셨을 뿐 아니라(창세기 2장 1절 참조), ‘제11시에 온 품꾼에게 까지 하루의 품삯을 주시는’(마태복음 20장 9절 참조) 하나님의 ‘다 이루심’에 맡기고 6일의 일을 6일로 ‘그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6일의 일을 6일로 그치게 하기 위해서는 한 날의 일을 한 날로 그치게 하기 위하여 한 날의 끝에 일 못하는 밤이 와야 하듯이 6일의 끝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곱째 날이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에게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인가? 그 첫 번째가 사람의 목숨이다. 예수님은 목숨이 천하를 얻는 일보다 더 큰 가치이기 때문에 목숨은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마태복음 16장 26절 참조)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위해 하루의 수고 끝에 일하지 않고 기력을 회복하는 밤의 휴식이 필요하듯이 6일의 수고 끝에도 하루 종일 일하지 않고 원기를 회복하는 안식일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신명기 5장 14절은 “네 남종이나 여종에게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출애굽기 23장 12절은 안식일에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여기서 ‘안식하다’, ‘숨을 돌리다.’는 단순히 ‘일을 그친다.’거나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을 넘어 수고에 지친 생명이 기력을 재충전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즉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동물이 6일의 노역 끝에 “기진할까”(마태복음 15장 32절) 염려하여 일을 그치고 ‘숨을 돌려’ 살라고 명하신 날, 곧 목숨의 날인 것이다.사람에게는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고린도전서 13장 2, 3절 참조). 사람이 제칠일 안식일에 일을 그치고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이처럼 중요한 사랑의 가치에 헌신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에게는 목숨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제칠일의 휴식이 필요하듯이 온전히 하루를 사랑의 가치에 헌신하기 위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제칠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진정한 안식은 사랑에 있다. 사랑이 없는 안식은 진정한 안식이 아니다.따라서 안식일 계명의 “안식하라”는 명령은 소극적인 의미에 있어서 일을 중지하고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휴식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이지만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들을 사랑함으로써 안식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이다. 따라서 안식일은 결코 내용이 없는 공허한 시간일 수 없고 오히려 사랑의 파트너들이 누리는 사랑으로 충만한 시간인 것이다. 물론 사람이 사랑에 헌신하는 안식의 시간에는 사랑 이외에 다른 아무 일도 병행할 수 없다. 그때문에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은 안식일에 안식을 누리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전적으로 헌신하기 때문에 안식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안식일에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식일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사실에 있어서 안식일은 ‘마치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풀 듯이’(마태복음 22장 2절 참조)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물로 ‘주시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십일금을 바치라고 하시듯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세기 2장 1~3절에서 안식일의 시간을 사람에게 선물로 주셨을 뿐 안식일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았으나 출애굽기 20장 8~11절, 31장 12~17절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사람의 일을 마치기 위해 안식일을 하나님께 바칠 것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출애굽기 23장 12절과 신명기 5장 12~15절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노예와 짐승들에게까지 확대하고 있으며 출애굽기 34장 21절은 경작하고 추수하는 환경에서도 예외 없이 안식일을 하나님께 바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안식일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하시는가? 그것은 모든 권력의 주체들이 자신의 생명과 시간뿐 아니라 자식과 노예와 가축의 생명과 시간에 대한 소유권과 지배권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안식일에는 6일 동안에 자신과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행사해 왔던 권리를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이 같은 요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신명기 5장 12절; 출애굽기 20장 8절 참조)는 명령으로 압축되고 있다. 제칠일에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거룩하게 지킨다.’는 표현에는 안식일을 ‘하나님을 위한 용도로 성별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제사장들이나 나실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자신을 거룩함과 성별의 상태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식일도 하나님을 위해서 거룩하게 성별해야 한다는 취지가 나타나 있다(레위기 23장 1~3절 참조).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안식일을 성별하는 행위에는 당연히 개인의 종교적 헌신과 공공 예배활동이 포함되어 있다. 레위기 23장 1~3절에서 안식일은 ‘너희가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의 하나이며(2절 참조), “여호와의 안식일”이다(3절).

 안식일에 금지된 ‘일’
 그러면 안식일 계명은 안식일을 휴일(holiday)과 성일(holy day)로 삼기 위해 안식일에 어떤 일들을 하지 말라고 금지하였는가?안식일에 금지된 ‘일’은 사람들이 보통 날들에 행하던 정규적이고 직업적인 활동들이다. 사람들이 안식일에 휴식을 취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통 날들에 행하던 정규적인 활동들이 중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날에 행하는 일상적인 일들을 안식일에도 행한다면 사람들이 안식일에 휴식을 취할 수 없으며 안식일이 보통 날들과 다를 것이 없는 날이 되므로 안식일의 신성성이 더럽혀지는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밖에도 ‘안식일에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고’(이사야 56장 2절 참조),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사야 58장 13절 참조)을 명령하셨다. 모든 악과 쾌락과 개인적인 이기심과 쓸데없는 잡담 등은 사람이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태복음 5장 8절 참조) 일에는 물론 참다운 안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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