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의 치료를 강행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종교적 반대자들이 자신에 대해 안식일을 범하는 자로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이때 그가 만약 병자의 치료를 안식일 아닌 다른 날로 미루었다면 그의 적대자들은 안식일 문제로 예수님을 괴롭힐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에 적대적인 바리새인들의 눈앞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병자를 치료하셨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한 일 때문에 적대자들이 자기를 안식일의 범법자로 고발할 것을 잘 알면서도 안식일에 적대자들의 눈앞에서 병자의 치료를 강행하신 것인가? 그가 안식일 자체나 또는 안식일 계명의 계율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는가?
안식일 계명은 십계명의 하나이다. 때문에 안식일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관점은 십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관점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공적 활동의 초기부터 적대자들로부터 율법을 폐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았으나 이 같은 오해에 대해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반대하였다. 자신의 사명은 결코 율법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며 율법에 대한 자신의 관점은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져서는 안 된다(마태복음 5장 17, 18절)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분이 안식일 계명의 폐지를 의도하셨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실상 그분은 복음서 어디에서도 안식일 계명의 폐지를 언급하시지 않았으며 더욱이 예수님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린 시절부터 관습적으로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가 하나님을 예배하셨다.
그리고 안식일에 자신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가던 제자들이 시장해서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 때문에 바리새인들로부터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마태복음 12장 2절)라고 비판을 받으셨을 때에도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로 자신과 제자들을 변호하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과 제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안식일 계명이나 안식일 규칙 자체를 비판하는 대신에 안식일 규칙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편협한 인식과 안식일 규칙을 빙자한 그들의 몰인정스러움을 성서적으로 비판하셨다.
그리고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신 일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안식일을 범하셨다고 비난했을 때도 예수님은 결코 그 같은 비난을 받아들이시지 않고 오히려 자신은 결코 안식일을 범하지 않았다고 항변하셨다.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심으로써 충돌한 규칙은 성경이 명하는 안식일 규칙이 아니라 랍비들이 정한 잘못된 안식일 규칙이었다. 예수님이 이 규칙들을 존중하지 않은 것은 랍비들이 가르치는 안식일 규칙이 하나님의 뜻에 배치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랍비들의 안식일 규칙은 인간의 필요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랍비들 사이에서도 “이 규칙들에는 성경의 가르침은 별로 나타나 있지 않고 규칙들만 많아서 마치 머리털에 태산을 매달아 놓은 것 같다”(Mishnah, Hag, 1장 8절)는 비평이 발생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바리새인들이 수없이 예수님에 대해 안식일 계명의 범법자라고 공격했으나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붙잡히시어 대제사장들과 공회 앞에 서게 되었을 때는 그들이 안식일의 범법자로 예수님을 정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그 이유가 예수님을 고발하는 증인들의 구체적 주장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마가복음 14장 56~58절)는 것인데 이것은 대제사장들도 예수님에 대한 안식일 범법자의 비난이 거짓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과 다른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함으로써 바리새인들에게 문제를 제기한 안식일의 규칙들은 성서가 규정하고 있던 정당한 안식일 규칙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문제 삼은 안식일 규칙들은 당시 유대 사회에 만연되어 있던 유대교의 잘못된 안식일 규칙들, 곧 삶에 지친 사람을 소생시키는 능력으로서의 안식일 규칙이 아니라 안식일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반(反)생명적 압제로서의 안식일 규칙들이었다.
예수님이 폐하려 했던 것은 결코 성서가 가르치고 있는 안식일 규칙이 아니라 랍비들이 제정한 비성서적이고 비인간적인 안식일 규칙들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비성서적이고 반생명적인 규칙들을 폐하고자 하신 것은 비성서적인 안식일 규칙으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그치게 하고 그때까지 잘못된 안식일 규칙들로 말미암아 왜곡된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와 기능을 태초에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본래의 모습대로 회복하고자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안식일의 진정한 목적과 기능은 무엇이었는가? 예수님에게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날이며(마가복음 2장 27절), 하나님이 사람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기 위해 마련하신 날이다(마태복음 12장 7절; 마가복음 2장 27절). 따라서 당연히 사람이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은 것이며”(마태복음 12장 12절), 병자의 상태가 위급하지 않다고 해서 그 병자에 대한 치료를 안식일 아닌 다른 날로 미루어 그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은 오히려 안식일의 목적에 위배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안식일에 예수님의 은혜로 치유를 받은 사람들에게 안식일은 자신들의 육체와 영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속박을 벗어나 주님 안에 있는 자유로 탈출할 수 있었던 사건의 기념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수님의 쉼과 안식일
그러면 예수님과 안식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예수님은 자신에게 안식일의 범법자라고 공격하는 적대자들에게 자신은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가복음 2장 18절, 마태복음12장 8절)고 주장하셨다. 그러면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에 무엇을 하시는가?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로 발생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마태복음 12장 1~8절) 직전에 삶에 지친 인생들을 향하여 자신 안에 있는 쉼으로 들어오라고 호소하신 초청의 말씀을 소개하고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장 28~30절).
“수고하는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쉬라”는 이 초청이야말로 “안식일의 주인”의 초청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생명들에게 쉼을 줄 수 있는 권능이야말로 “안식일의 주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 아닐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안식일 안에 약속되어 있는 진정한 쉼도 다른 무엇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그 안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안식을 위해 사람들이 메야 하는 멍에는 유대교 랍비들이 백성들에게 부과한 39개 항의 안식일 규칙들이 백성들의 심령을 짓누르는 무거운 멍에인 것과는 달리 “쉽고 가벼운 멍에”라고 주장하셨다.
그러면 무거운 계율적 의무들을 실천함으로써 안식을 얻고자 헛되이 애쓰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가 새롭게 제시하는 “쉽고 가벼운 멍에”로서의 안식일 쉼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새롭고 단순한 안식일 규칙들을 준수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안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론 안식일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육체적 휴식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용서와 구원의 평강과 기쁨을 의미하였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의 기자도 이 점을 강조하여 안식일의 진정한 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누리는 세속적인 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날” 그리스도가 초청하는 구원의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경험하게 되는 안식이라고 주장하였다(히브리서 4장2~11절).
그리고 그리스도가 약속하는 안식일의 구속적 의미는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선포하신 말씀과 그의 안식일 봉사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설교에서 안식일이 뜻하는 구속적 약속을 성취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선포하였다(누가복음 4장 18, 19절).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불쌍한 죄인들을 용서하고 치료하는 자신의 구속 활동을 안식일에 더욱 강화하였으며 이로써 “사탄에게 메인 바 되었다가” 예수님에 의해 치료받은 영혼들은 안식일을 해방의 날로 경험하고 회상할 수 있었다(누가복음 13장 16절).
더욱이 그리스도는 금요일 오후에 십자가에서 당신의 대속사업을 마치신 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으며(요한복음 19장 30절), 무덤에서 쉬심으로써 안식일을 구별하셨다(마태복음27장 57~60절; 마가복음 15장 42, 46절; 누가복음 23장 53,54절).
창조 사업의 끝에 하나님이 누리셨던 안식일 안식이 완결되고 완벽한 창조에 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만족과 기쁨을 나타낸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 끝에 그리스도가 누리셨던 안식일 안식은 인간에게 회복된 완결되고 완벽한 구속의 성취에 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쁨을 나타낸 것이었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태복음 24장 20절)
복음서는 예수님이 어릴 때부터 안식일을 충실하게 지키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부 바리새인들이 부당하게 비난한 것처럼 예수님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예수님은 유대교 장로들이 제정한 잘못된 안식일 규칙들의 폐단을 없애고 안식일의 기본적인 원칙, 곧 사람을 살리는 자비의 원칙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셨다.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는 동안에 안식일을 폐하시지 않았을 뿐아니라 안식일을 일요일 같은 다른 날로 옮기지도 않으셨고 오히려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도 안식일을 완전하게 준수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당부하셨다. 즉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감람산에서 열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예언하시면서 안식일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누가복음 21장 20, 21절). 그리고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태복음 24장 20절). 예수님은 예배와 평화와 기쁨의 날이 되어야 할 안식일에 시급히 도망하게 될 때 발생할 공포와 혼잡과 혼란을 염두에 두시고 “도망하는 일이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권고하셨다.
예루살렘이 로마의 군대에 의해 에워싸이고 드디어는 불에 타 멸망된 것은 A.D. 70년의 일이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이 최소한 A.D. 70년까지는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과 예수님께서는 A.D. 70년 이후로도 제자들이 안식일을 계속해서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계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빌어 세계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거듭남 이후에도 안식일이 여전히 예배일로 기념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는데(이사야 66장 23절) 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시대에도 안식일이 폐지되거나 다른 날로 변경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며 승천하실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도 이사야서에 있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신천지와 안식일에 관한이사야서의 말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이사야 66장 22, 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