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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마크 핀리에 의하면,

 존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했다. 그들이 일련의 모임에 참석했을 때, 나는 성경 예언 전도회를 열고 있었고(존과 그의 아내는 예언 전도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들은 전에 결코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진리들의(진리들로 인해) 도전을 받았다(받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 속에 많은 의문들이 생겨났다. 특히 성경의 안식일이 그들을 괴롭혔다(특별히 성경적인 안식일을 받아 들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이 성경의 진리임을 확신했지만, 그들의 담임 목사는 그들의 마음 속에(그들에게) 안식일에 관한 여러 가지 중대한 질문들을 제기했다. 그들은 의심하기 시작했고, 혼동을 일으키더니(혼란스러워 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얻기 원했다. 그러나 함께 성경을 연구하면서 진리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깊어져 갔다. 그들은 갖고 있던 의문들에 대해 확고한 답을 찾았다. 그들의 의심은 사라졌고, 그들은 안식일 준수의 참된 기쁨과 복을 발견했다. 

 아마도 당신 역시 성경의 안식일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이 있을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절들도 몇 개 있을 수 있다. 성경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의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공해 준다. 성경을 통틀어(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질문을 하도록 초청하시고 그 분의 말씀으로 확고한 답을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선언하신다”(요한복음 17:17). 베드로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부언한다(베드로전서 3:15).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디모데후서 2:15)하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한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이사야 28:9~10)라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주제에 관해 성경에 나오는 가르침의 모든 범위를 반드시 확인하라. 이해하기 힘든 구절에 이해의 폭을 쌓아 올리지 말라.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이해하기 원한다면), 그 주제에 관해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연구하라. 성령께서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하게 하라.  

 “이 주제에 관한 증거의 중요성은(중요한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대부분의 구절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명확하지 않은 것이 명확한 것을 가리지 않게 하라. 이해하지 못하는 구절이 있으면, 성경의 명확한 구절들이 그 구절을 설명하게 하라. 명확하지 않은 것을 끝까지 파헤치고 이전에(지금까지) 배워 온 교리를 방어하기 위해(방어하려는 생각으로), 충분히 명료하고 확실한 성경의 구절들과 문장들을 무시하지 말라.  

 여기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네 가지 원칙이 있다:
 1.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성경에 접근하라(요한복음 7:17).
 2. 당신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 진리를 드러내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라(마태복음 7:7; 요한복음 16:13).
 3. 주어진 주제에 관한 각각의 관련 성경절을 비교하라(고린도전서 2:13).
 4. 하나님께서 드러내 주시는 진리에 따라 행동하라, 그러면 그 분께서 더 많은 진리를 보여 주실 것이다. 모든 진리가 당신이 아는 진리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도록 기다려라(요한복음 12:35).

 우리가 신실한 마음으로 그 분의 말씀에 접근할 때, 그 분께서는 그 분의 진리를 드러내시고, 우리들의 마음을 깨우치시며, 성령으로 감동시키실 것이다. 당신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답을 갖고 계신다. 다음 몇 페이지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질문들 중 일부와 그에 대한 답을 읽을 때(질문들과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지혜와 이해를 주시도록 기도하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질문들 – 파트 1

 진리를 탐구하는데 있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사한(비슷한) 질문을 해 오고(했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확실한 답을 찾았다. 따라서 계속 읽기 바란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질문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폐하고 새로운 사랑의 계명을 제정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는가?  마태복음 22:37~40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계명은(말씀은) 어떻게 된 것인가(이해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이 아닌가? 이것이 새로운 계명이다(계명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구약에 주어진 율법을 요약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라울 수도 있다. 신명기 6:5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선언한다. 레위기 19:18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말한다. 구약의 하나님께서는 무궁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다(예레미야 31:3). 마태복음 22:40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두 계명[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선언하신다. 처음 네 계명은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실재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마지막 여섯 계명은 어떻게 그들이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다(마태복음 5:17). 그 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기꺼이 율법을 지키는 방법을 보여 주시고 그 의미를 확대하셨다(이사야 42:21).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사랑이 율법을 성취시키는지 보여 주신다(로마서 13:10). 그 분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덧붙이신다(요한복음 14:15).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믿음은 예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구원을 받는 손이다. 믿음은 불순종이 아니라 순종으로 인도한다.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로마서 3:31)고 명확히 말한다. 또한 로마서 6:1과 14~15에서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았던 반면, 신약에서는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데 맞는가?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로 얻는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방법의 구원을 갖고 계시지 않다. 디도서 2:11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라고 확인해 준다. 구약에서, 남자와 여자는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제물로 바친 양은 메시아의 오심을 가리켰다(창세기 3:21과 22:9~13). 신약에서, 남자와 여자는 오신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유일한 구원의 수단이시다(사도행전 4:12).

 우리는 새 언약 하에 있는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는가?

 실제로 새 언약은 오래된(옛) 언약보다 더 오래 되었다. 그것은(새 언약은) 메시아가 인류에 대한 사단의 치명적 지배력을 깨기 위해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때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주셨다. 새 언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로부터의 구속의 약속이 포함된다. 그 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다. 그 분께서는 우리의 가슴에 율법의 원칙을 기록하신다. 사랑은 순종의 동기가 된다. 생명에는 새로운 힘이 있다(히브리서 8:10; 에스겔 36:26; 시편 40:8). 오래된(옛) 언약 하에서,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것을 약속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출애굽기 19:8과 24:3, 7). 겉으로만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려는 모든 시도는 좌절된 패배로 이어진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수 없는 율법은 우리를 정죄한다(로마서 3:23과 6:23). 새 언약 하에서, 우리는 새로운 주인, 즉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지위를 갖는다(요한복음 1:12; 고린도후서 5:17; 로마서 8:1).

 바울이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선언했는데 안식일 준수가 불필요한 것 아닌가?(골로새서 2:16~17)

 이 구절, 즉 골로새서 2:16~17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오해를 받고 있는 구절 중 하나이다. 성경 해석의 한 가지 원칙은 조금이라도 불명확한 부분이 있으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안식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명백하다. 안식일은 창조 시에 주어졌다(창세기 2:1~3).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셨다(누가복음 4:16). 바울은 그것을(바울도 안식일을) 지켰다(사도행전 13:42~44). 그리고 그것은 하늘에서도 지킬 것이다(이사야 66:22~23). 성경은 두 종류의 안식일에 대해 언급한다: 제칠일 안식일과 연례 안식일. 창조 시에 제정되고 십계명의 일부인 제칠일 안식일은 사랑이 많으시고 전능하신 창조주를 매주 상기시켜 준다.

 연례 안식일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된다. 골로새서 2:16~17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히브리서 10:1은 그림자 법과 동물을 잡아 드리는 제물을 연결시킨다(골로새서 2:17의 그림자가 구약의 제사인 것으로 설명한다). 에스겔 45:17은 골로새서 2:16~17과 똑 같은 순서로 똑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절기와 제물(이스라엘의 집을 위해 화해시키기 위한 먹을 것, 마실 것, 절기, 월삭, 그리고 안식일)의 의식제도와 연결시킨다. 레위기 23:5~32는 의문의 안식일에 대해 논하고 있다(5절의 유월절, 6절의 무교병, 10절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 17절의 첫 요제, 24절의 나팔, 24절의 초막절, 그리고 27~32절의 속죄일 등 이 모든 것은 구체적으로 안식일로 불렸다.)

 이러한 연례 안식일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재림의 전조가 되는 사건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장래에 오실 메시아의 그림자로 설계하셨다. 레위기 23:37은 골로새서 2:16~17의 말을 사용하여 이러한 의문의 안식일들을 묘사한다. 레위기 23:38은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의문의 안식일과 제칠일 안식일을 구분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의식법의 그림자 안식일들은 그 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러나, 제칠일 안식일은 계속해서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분과의(자신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구별해 주는 표징으로서 제칠일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계시록 14:12; 에스겔 20:12와 20).


 하나님의 법에 대해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질문들 – 파트 2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고 말하는 로마서 14:5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정말로 한 날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때로 성경이 말하는 것뿐 만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에도 주의 깊게 주목하면 도움이 된다. 5절과 6절은 안식일 경배에 대해 아무 말로 하지 않는다. 다만 한 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이 특정한 날이 안식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가정이다. 로마서 14:1은 토론이 “의심스러운 논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거나 의심스러운 문제들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면서 전체 구절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창조 시 하나님께서 따로 구별하신 제칠일 안식일(창세기 2:1~3)은 도덕법의 중심(출애굽기 20:8–11)에 위치해 있는가? 이것이 의심스러운 문제인가?

 확실히 그렇지 않다. 이 문장의 열쇠는 로마서 14:6에 있는데 이 구절은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고 말한다. 이 성경절에서의 문제는(이슈는) 안식일이 아니라 금식을 중심으로 삼는다(금식일이다).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특정일에 금식하는 것에 특별한 장점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한다(판단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최소 두 번 금식하고 그것에 대해 자랑했다(누가복음 18:12). 로마서 14장에서, 바울은 특정일에 금식하고 안 하고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개인 양심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주일의 첫날 만나지 않았는가? 사도행전 20:7을 참고하라.

 이 모임이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이유는 바울이 다음 날 떠날 예정이었고 유두고를 소생시키는(다시 살리는) 기적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 모임이 밤에 열린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일주일의 첫날의 어두운 시간대였다(저녁 시간이었다)(8절). 성경의 시간상으로는(시간 계산 방식은) 하루의 어두운 시간대가 밝은 시간대를 선행한다(‘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기 때문에 저녁이 하루의 시작이다.)(창세기 1:5).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해질녘까지 준수되었다(레위기 23:32과 마가복음 1:32). 이 모임이 주일 첫날의 어두운(저녁) 시간에 열렸다면, 그것은 사실상 토요일 밤 모임이었다. 바울은 모두 안식일(안식일 하루 종일) 신자들하고 모임을 갖고 있었다(신자들과 말씀을 나눴던 것이다).

 바울은 다음날, 즉 일요일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 모임은 토요일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다음 날, 바울은 걸어서 앗소까지 여행하고 나서 배로 미둘레네로 갔다. 새 영어 성경의 사도행전 20:7 말씀도 이것이 토요일 밤 모임이었으며 바울은 일요일에 여행했다고 확인해 준다. 바울이 부활을 기념하여 일요일을 신성시했다면, 왜 그는 일요일 전체를 예배하면서 보내지 않고 여행하면서 보냈겠는가? 기록은 바울이 안식일 준수자였음을 나타내고 있다(사도행전 13:42~44, 16:12~13, 17:2, 18:4).

 우리는 정말 어느 날이 일곱째 날인지 알 수 있을까?

 토요일이 일곱째 날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최소 네 가지 근거가 있다:

 1. 성경 : 예수님께서 예비일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누가복음 23:54). 그 분의 가장 가까운 추종자들은(제자들은) 명령된 대로 안식일에 쉬었다(누가복음 23:56과 마가복음 16:1).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금요일, 즉 예비일에 돌아가시고, 다음 날 쉬셨으며, 주일의 첫날, 즉 일요일에 부활하셨다고 믿는다. 안식일은 금요일과 일요일의 중간 날, 일곱째 날이자 토요일이다.
 2. 언어 : 세계 145개  이상의 언어에서 일곱째 날, 소위 토요일을 가리키는 말은 안식일이라는 말이다. 언어는 안식일이 수 세기를 거쳐 보존되어 왔음을 증언한다.
 3. 천문학 : 세계 주요 천문학자들은 주간사이클이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미국의 Royal Naval Observatory와 영국의 Royal Greenwich Observatory 같은 센터들은 주간사이클에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4. 역사 :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대해 정확한 기록을 보관해 왔다. 4,000년 이상 동안, 그들은 토요일에 진정한 안식일을 보존해(지켜) 왔다.

 나는 부활을 기념하여 일요일을 지킨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예수님께서는 일요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지 않으셨는가?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하지만 그 분께서는 우리에게 부활을 기념하여 그 날 경배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성만찬예식이 그 분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과 같이(고린도전서 11:24과 26), 침례는 그 분의 부활을 상징한다(로마서 6:1~6). 예수님의 부활의 상징은 이교 로마의 태양 숭배에서 기독교로 도입된 태양의 날에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베푸시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변형된(변화된) 새로운 삶의 상징으로서의(상징인) 아름다운 침례식이다. 침례라는 물 속 무덤에서, 예전의 사람은 상징적으로 죽어 장사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이 부활된다. 

 칠일 중 하루면 족한 것 아닌가? 왜 안식일을 그렇게 많이 강조하는가?

 이슈는 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주인의 문제이다. 절묘한 기만책을 통해, 사단은 하나님의 법을 변개하려는 배교 종교와 손을 잡고 일해 왔다(다니엘 7:25). 그는 진리를 땅에 던졌다(단 8:12). 그는 하나님의 진리의 벽을 무너뜨렸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그 무너진 데를 보수하라고 부르신다(이사야 58:12~13).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해야 한다(사도행전 5:29). 일곱째 날에 경배하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출애굽기 20:8~11). 알면서도 거짓 경배일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이 배교하여 단독으로(자기 뜻대로) 시작, 확립한(만든)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실질적인 질문은 “우리가 누구의 종인가?”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종인가 또는 사람의 종인가?(로마서 6:16). 자기 생일 전후의 날에 축하를 한다 해도(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의 생일 전날이나 다음 날에 아무리 축하를 한다해도)  이 날들이 자기(그 친구의) 생일이 될 수는 없다. 이 세상의 생일은 일곱째 날, 즉 성경의 안식일이다. 그 날은 사랑이 많으신 창조주의 기념일이다. 다른 날은 안 된다(기념일이 될 수가 없다).

 베드로는 초대 교황이었나?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태복음 16:18)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가이사랴 빌립보는 희랍 철학, 로마 논리학, 그리고 유대인의 전통적 종교의 중심지였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고 물으심으로써 큰 세계 정치종교제도를 배경으로 그 분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셨다. 제자들이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14절)라고 답하자, 그 분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고 물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깊게 하기를 갈망하셨다. 그 분께서는 메시아에 대한 고백을 이끌어내시고자 했다. 베드로는 즉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은 오직 성령의 영감 하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베드로[Petros, 움직일 수 있는 돌]라. 내가 이 반석[이 움직일 수 없는 터 – 내가 그리스도라는 것(베드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뜻함)]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고 선언하심으로써 베드로의 믿음을 확인해 주셨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 있다. 그 분께서는 건축자들이 버린 모퉁이 돌이시다(베드로전서 2:4~8). 베드로는 그 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했다.

 바울은 “그 반석은 그리스도시니라”고 선언함으로써 고린도전서 10:4의 이슈를 명확하게 했다. 다윗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시편 62:1~2)라고 선언한다. 예수님 이외에는 다른 터가 없다(고린도전서 3:11). 음부의 권세는 결코 그 분의 교회에 대해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임무를 오해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마태복음 16:23)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사단이 그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약점이 아니라(약점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강점 위에 세워졌다.   베드로는 스스로 놀라운 진리를 발견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힘의 원천이 되셨고, 그의 삶의 중심이 되셨고, 그리고 그가 서 있던 터가 되셨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에게 주신 “천국의 열쇠” (마태복음 16:19)는 무엇인가?

 열쇠는 문을 열고 닫는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한복음 5:39).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누가복음 11:52) 하늘 문들을 닫았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열쇠”는 남자와 여자들이 죄에 대해 용서, 정죄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그 분께서 갈바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죽음으로 말미암은 평화를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그 분의 말씀, 그 분의 가르침이었다.  (죄인들이 어떻게 죄를 용서받고, 정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해 평화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그 분의 말씀, 그 분의 가르침이었다.),약속된 메시아인 예수님의(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하늘 문을 연다(이사야 22:22).


 온전한 안식일 준수

 조나단은 난처했다. 마지막 시험이 안식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시험을 치는 것은 그의 양심을 범하는 것이었다. 그는 교수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다른 날에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 교수는 딱 거절했다. 그는 어떠한 예외도 둘 수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그가 조나단에게 다른 날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면, 다른 학생들도 핑계를 댈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조나단에게는 시험을 봐서 합격하던지, 아니면 시험을 보지 않고 낙제하던지 두 가지 대안뿐이었다(선택밖에 없었다).

 조나단은 전체 학기를(학기 전체를) 낭비하고(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서머 스쿨에서(여름 학기에서) 그 과정을(수업을) 재수강하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다(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조나단은) 안식일 이외의 다른 날에 시험을 볼 수 있는 문을 열어주시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다.

 시험 날이 밝아 오고 조나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뢰를(믿음을) 귀하게 여겨 주실 것을 믿으며 안식일 아침 교회로 조용히 걸어갔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위대하심을 증명하시기 위해 강력하고도 기적적으로 행하실 때가 있다. 시험이 끝나고 교수가 학생들의 시험지를 서류가방에 안전하게 넣고서 강의실에서 집으로 걸어가다가 강도를 당하고 말았다. 도난품은 시험지로 가득 찬 서류가방이 유일했다. 교수는 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 서류가방은 영원히 찾을 수 없었다. 

 졸업이 불과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에, 교장은 놀라운 발표를 했다. 그 과목의 수강생은 모두 합격점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과목의 점수는 그 시험 때까지 보았던 시험의 평균 점수로 처리하기로 했다. 조나단은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신 하나님의 은혜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성실성을 복 주신다.

 성경 시대에 성실한 백성들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사뮤엘상 2:30)고 선언하신다. 성경의 말씀은 수 세기를 통해 후대에까지 이어져 왔다. 성경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성경의 말씀은 천 년 전에 쓰여졌을 때 못지 않게 오늘날에도 진실되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신명기 28:2).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넘치는 복을 약속하신다. 이것은 특히 매주 안식일을 지키는데 열성적인 사람들에게 그러하다(이 약속은 특별히 안식일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진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복 주셨다”(창세기 2:3).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것은 무엇이든 영원한 복을 받는다.

 (역대상 17:27). 하나님의 영원한 복은 제칠일 안식일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날을 지킬 때 넘치는 복을 받는다(이사야 56:2).

 이것은 우리를 어떤 특정한 질문으로 이끈다. 어떻게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안식일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떤 활동들이 있는가? 우리의 안식일 복을 파괴하는 것들이 있는가(안식일의 복을 받지 못 하게 하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해야 할 활동과 해서는 안 되는 활동의 리스트를 주지 않으신다. 그 분께서는 안식일 준수의 구체적 사항을 정의하지 않으신다. 그 분께서는 적정한 안식일 준수 원칙을 주신다. 이 원칙들은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의 안식일 경험을 형성한다. 우리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그 분께 대한 우리의 뜻을 행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안식일 준수의 풍요로운 경험 속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안식일 준수 시 우리를 인도할 세 가지 성경의 원칙들에 대해 살펴 보자.  

 원칙 1

 원칙 1 : 안식일은 우리의 창조주를 경배하는데 전념하는 날이다.

 안식일 준수의 본질은 경배이다. 안식일에, 우리는 모든 하늘의 존재들과 함께 즐겁게 선언할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시록 4:11).

 우리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매 안식일에, 우리는 그 분을 창조주로 경배함으로써 그 분께 감사를 드린다. 레위기 23:3은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고 말한다. 안식일은 “성회, ” 즉 경배와 찬양을 위한 하나님 백성들의 성스러운 모임이다.

 수 세기를 통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유대인들은 매 안식일 그 분을 경배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일 준수의 모본을 보이셨다. 복음서 기자인 누가는 예수님의 안식일 규례를(행적을)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누가복음 4:16). 예수님께 있어(예수님에게) 안식일은 경배를 통해 하나님과 유대감을(친밀감을) 나누는 날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만나 그 분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 분의 말씀을 연구하며, 기도 속에서 그 분을 찾고, 서로 동료애를(형제애를) 나눌 때, 그들은 풍요로운 복을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매 안식일에 나자렛에(나사렛에) 있던 요셉의 목공소에 그 분의 도구들을 두고 회당에서 경배에(예배에) 참석하셨다. 안식일 경배는(예배는) 예수님께 중요했다. 그 분의 습관 또는 규례는 안식일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고, 그 분의 말씀을 흡수하며, 그 분의 백성들과 유대감을 나누는 것이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매 안식일에 만나 그들의 영적인 힘을 새롭게 했다. 그들은 서로 만나 서로를 격려했다. 사도바울이 히브리서에서“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Hebrews 10:24~25)고 말했을 때, 그들은 바울의 조언을 따랐다. 매 안식일, 하나님께서는 경배(예배) 속에서 가장 깊은 만족을 찾도록 우리를 초청하신다. 안식일은 하늘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안식일에 경배의 기쁨에(예배의 기쁨 속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매주 영원을 경험하도록 허락하신다. 안식일에, 우리의 우선순위는 일이 아니라 경배이다(예배이다). 안식일은 일상의 고된 일에서(노동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안식일에, 우리는 생계를 이어가는 부담에서 자유를 얻어 최고의 삶을 경험한다. 

 넷째 계명은 너무 명백해서 오해할래야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명령이 아닌 단순하게 좋은 조언만 주시면,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무시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한 명령을 주셨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0:8~10). 하나님께서는 “기억하라”고 말씀하시지만, 대부분의 세상은 이것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것만 거룩하게 지킬 수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유일한 날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날도 안식일을 대신할 수 없다. 경배보다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날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킨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John 8:32). 안식일 경배에 대한 진리는 끊임없는 일의 부담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매 안식일, 전능하신 하나님과 사랑이 많으신 창조주께서는 우리의 존재 가치는 우리가 얼마만큼 성취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신다. 우리는 일에서 해방되어 경배로(예배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일에서 그들의 주체성을(정체성을) 찾는다. 그들의 일은 그들을 정의한다. 안식일은 우리의 일이 아닌 우리의 주체성에서(정체성에서)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찾도록 우리를 초청한다.

 프랑스 혁명

 무신론적 프랑스 혁명 기간 중 소위 이성의 시대가 밝아오면서, 프랑스인들은 불어로 “공화 달력” 또는 “혁명 달력”을 채택했다. 이 달력은 1793년부터 1805년까지 12년 간 프랑스에서 사용되었다. 그것은 7일 주간사이클과  예배일을 폐지하고 10일 주간사이클을 도입했다. 모든 노동자들은 9일 동안 일하고 열 번째 날에 휴식과 오락의 날을 가졌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0일 주간사이클을 채택한 이 혁명 달력을 폐지하고 7일 주간사이클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9일 간의 노동과 하루의 휴식 시스템을 가진 이 새로운 달력 하에서 전혀 잘 지낼 수가 없었다. 창조주를 경배하도록 이끄는 7일 주간사이클에는 자연의 리듬이 있다. 에덴의 주간사이클을 무시하면,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정서적으로 고장에 취약해 진다(쉽게 약해진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 스스로(하나님 당신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우리의 생애는 큰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70개 이상의 나라를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의 진리를 함께 하면서(나누며) 여행하면서, 나는 그 분을 따르려는 자세를 확고히 하고 그 분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그들 중 일부는 안식일 준수를 위해 실질적인 시험을 거친 사람들이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는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들의 고용주들은 안식일에 일하러 나오지 않으면 해고할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협박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아 왔다.

 안식일 준수 경험

 산드라는 일리노이의 우편 공무원이었다. 그녀는 나이가 들었는데도(오랫동안 일했는데도) 그녀의 상사는 그녀가 안식일에 일하지 않으면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우리는 산드라를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우리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6:33~34에서 하신 약속을 붙잡았다. 기적적으로는, 산드라의 상사는 자신의 첫 결정을 번복했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유지했고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로저는 안식일에 그의 소매점 문을 닫았다. 그는 그 날 매출의 거의 30%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친구들은 그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게 유리에 “성경의 안식일인 오늘은 휴업합니다”이라는 사인을 붙였다. 처음 몇 주는 힘들었다. “매상이 처음에는 떨어졌지만, 놀랍게도 점차 올라가고 있었다. 로저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게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19)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신실한 분이심을 발견했다. 안식일에 일하는 문제는 신뢰의 문제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애를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맡길 정도로 그 분을 신뢰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그 분께 성실하면 그 분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안식일에 일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하는 것은 극히 중요하다(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주택 모기지(융자), 월세, 자동차 월부금, 신용카드 사용대금, 그리고 다른 많은 경비를 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좋고 월급을 많이 주는 일자리를 공급해 주시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 분께 신실해지기로 결정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면, 항상 내부의 만족감으로(평안으로) 우리를 채워 주신다. 그 분께서 하신 약속 뒤에는 그 분의 왕위의 영광이 있다(하나님의 약속은 온 우주의 왕께서 직접 하신 약속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으시기” (히브리서 6:18) 때문에, 우리가 그 분께 신실하기만 하면, 그 분께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줄 책임을 맡아주실 것이라고 절대로 확신할 수 있다.

 안식일 예배는 건강한 영적 생활을 위해 필수적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려면, 안식일 예배는 매우 중요하다.


 원칙 2

 원칙 2 : 안식일은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회복을 위해서만(위해서 온전히) 구별된 날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을 더럽혔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표류했다(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선지자 느헤미야의 시대에, 안식일을 기억하지 않는 일반적인 삶의 활동들로 인해 안식일의 신성성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교도들의 영향을 받았다. 느헤미야는 그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느헤미야 13:15).”

 느헤미야는 우려했다. 하나님의 안식일은 일반적인 보통 날이 되었다. 창조주께서 우리의 영적,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회복을 위해 구별하신 날은 고된 노역의 날이 되었다. 사고 팔기, 일하고 벌기 같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일인 안식일이 평소처럼 일하는 날이 되어 버렸다. 느헤미야는 침묵을 지킬 수만은(도저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은 예루살렘 거리마다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17절). 원칙은 명확하다. 우리가 세속적인 일에 너무 열중하여 하늘의 영원한 것을 잊어버리게 될 때, 우리는 안식일을 더럽힌다(더럽히게 된다). 이사야는 이에 대해 자신의 통찰을 가하고 있다(이사야는 안식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이사야 58:13~14).
 달리 말하면, 우리는 복을 풍성히 받을 것이다.

 개인 간증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나는 커네티컷 노위치에 있는 한 YMCA 고등학교 스포츠 팀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우리 팀은 뉴잉글랜드 챔피언십에 출전권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작은 마을 출신의 10대 소년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토너먼트는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서 목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는데 문제는 안식일 내내 농구를 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최근에야 성경의 안식일을 이해하고 안식일에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었다.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불순종하는 것이었다.

 안식일은 내가 섬기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표시였다. 나는 아주 어려운 결정에 직면했다. 내가 집에서 안식일을 지키느냐, 아니면 농구팀과 여행하면서 하고 싶던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내 마음은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한 번만 경기하는 게 뭐 그리 잘못된 것일까? 하지만 내 존재의 깊은 내면 속에서, 나는 농구 토너먼트에 나가 주의 날인 안식일을 무시하는 것이 내 양심을 범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몹시 가고 싶었지만, 내 마음 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계속되고 있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농구인가? 예수님인가? 나는 고뇌하다 정신적인 멘토가 되어 줄 만한 어떤 경건한 그리스도인 여자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그녀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그녀는 아주 단순한 말로 표현했다. “마크, 예수님께 신실해라.” 그녀의 조언과 내 내부의 확신에 따라, 나는 토너먼트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여행하면서 호텔에서 자고 레스토랑에서 먹으며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망친 것처럼 보였다.

 이 경험을 뒤돌아 볼 때, 나는 미소가 나온다(미소를 짓게 된다). 오늘날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나누며 세계 각국을 여행할 기회를 가져 오고 있다. 몬트리올에서 모스크바까지, 러시아에서 르완다까지, 칠레에서 중국까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을 느껴 왔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첫 헌신을 한 이후 내 생애에 측량할 수 없는 복을 내려 주셨다. 내 꿈을 포기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꿈을 열심히 따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분께서는 그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마가복음 10:28)라고 말했다. 여러분은 베드로가 큰 소리로 “우리는 그에 대해 무엇을 받을 것인가?”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놀라운 답을 주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마가복음 10:29~30). 달리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래, 너희가 내게 너희의 삶을 헌신하면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내가 너희에게 백 배의 복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할 때, 그 분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의 생애를 기쁨, 평화, 만족, 그리고 목적으로 채워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말씀을 성실하게 성취하신다고 확실히 간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큰 복 중 하나는 안식일의 휴식이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 예수님께서 주시는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휴식으로 인한 우리의 회복을 어떻게 값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안식일이 내게 주는 복에 값을 먹일 수 없다(축복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이 영적인 휴식의 시간은 내 생애의 필수 부분이다. 그것은 눈코 뜰 새 없는 내 일상의 스케줄을 돌아가게 해 주는 원동력이다. 그것은 내 가족과의 유대를 강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어 왔다. 이제 안식일에 대한 세 번째 성경 원칙을 살펴 보자.

 
 원칙 3

 원칙 3: 안식일은 우리의 가족 및 친구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친밀한 관계를 갖고) 예배에 참석한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을 비는 날이다.

 이제 수 천 년을 되돌려 여러분의 마음을 에덴동산의 아름다움과 장엄한 분위기 속에 머물게 해 보라. 여섯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고 기록하고 있다. 에덴동산의 화려함 속에 죄, 병, 고통, 또는 사망은 없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는 사랑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조에게 사랑의 선물, 즉 안식일(요한일서 4:8과 창세기 2:1~3)을 주셨다. 아담과 이브가 함께 보낸 완전한 첫날은 안식일이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마음으로 소통한 밀접한 순간들은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은 관계를 강화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과 우리 서로를 위한 시간이다. 안식일은 하나님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우리의 관계를 강화하는데 시간을 투입할(보낼) 수 있는 날이다.

 여러분은 한 주가 쏜살같이 지나가 가족을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음을 느껴 보았는가? 연구에 의하면,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일대일로 갖는 시간이 일주일에 두 시간이 안 된다고 한다. 안식일은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매주 상기시켜 준다.            

 유대인 극작가인 헤르만 우크는 그의 생애에서 안식일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브로드웨이 사회의 혼란 속에서 어떻게 안식일이 평화의 섬이 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금요일 밤 해질녘, 그는 몇 시간 남지 않은 연극 개막을 앞두고 북새통으로 인해 어지러워진(복잡하고 어지러운) 극장을 떠난다. 집에 도착하여 아내의 따뜻한 포옹과 자녀들의 미소를 대하면서, 그는 사랑의 관계로 둘러싸인다. 촛불이 켜지고 식탁이 준비된다. 가족이 함께 먹고 시간을 갖는다. 자녀들은 평소 궁금히 여기던 질문을 하고, 쇼 비즈니스의 세계는 잊혀진다. 그가 토요일 해질녘 후 극장에 돌아왔을 때,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그는 변해 있다. 휴식과 회복의 안식일 덕택에(안식일을 보낸 후에) 그는 하나님 그리고 가족들과 더욱 가까워지게 된다.    

 어떤 동료가 우크에게 “나는 자네의 종교를 부러워하지는 않지만, 안식일은 부럽네”라고 말한다. 누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만들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인가?
 
 예수님에게, 안식일은 사랑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안식일은 예배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이 정확히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수많은 기적을 베푸신 이유이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아버지의 연민을 드러내셨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한 행위에 대해 예수님을 비판했을 때, 그 분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태복음 12:12)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선을 행하는 날이다. 이웃이 아픈가? 그에게 집에서 만든 맛있는 수프 한 그릇을 가져다 주라. 낙담한 친구가 있는가? 전화를 걸어 사기를 올려 줘라(용기를 북돋워 주라). 길거리에서 쓸쓸해 보이는 홀아비를(사람을) 보았는가? 그 사람을 초대하여 점심을 같이 하라(식사를 같이 나누라).  

 안식일에,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를 기억한다. 자연보다 창조주를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지난 몇 해 동안,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크면서 안식일 오후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산책을 하면서) 보냈다. 아이들이 모두 장성하여 결혼까지 한 지금도, 아내와 나는 종종 자연 속에서 안식일을 보낸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시간을 함께 하는(보내는) 것을 즐긴다. 집 근처의 오솔길을 걷고, 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가끔 사슴도 보고, 야생화(들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다음 주를 위해 피곤한 몸을 쉬고 영적 능력을 고양한다(얻는다).   

 안식일은 고역이(지루하고 따분한 날이) 아니다. 그 날은 생명을 주는 날이다. 안식일은 짐이 아니다. 그 날은 복이다. 안식일은 의무 그 이상의 날이다. 그 날은 즐거운 날이다.

 여러분이 아직까지 안식일에 경배하는 것의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번 주에 시작하면 어떨까(어떻겠는가)? 여러분이 아직까지 안식일의 휴식이 주는 평화에 들어가지 못했다면(평화를 경험하지 못 했다면), 지금 그 경험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원한다면, 안식일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안식일은 단지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안식일은 경험해야 할 기쁨이다. 여러분 스스로 안식일의 복을 경험하면어떨까(어떻겠는가)? 예수님께서 두 팔을 크게 벌리시고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위키피디아 기고자, “프랑스 공화 달력,” Wikipedia.com,http://en.wikipedia.org/wiki/French_Republican_Calendar(2009년 3월 11일 접근).
2. 헤르만 우크, 이 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다(뉴욕 : Back Bay Books, 1992), 45~46 페이지.
3. Ibid.,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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