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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 준수
  > 안식일 준수 경험담
나의 간증 - 나의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필동에 있는 큰 집에서 살 때인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친구따라 우리집 가까운 곳에 있는 장로교회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으러 갔었다. 오래 다닌 친구는 화판을 받는데 나는 공책 한권을 받으면서 몹시 친구가 부러워 결심을 했다. ‘나도 일년 동안 꾸준히 다녀서 저 멋있는 화판을 받아야지.’ 그 당시에는 화판에 도화지를 끼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렇게 멋잇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 중간에 불행히도 우리는 정릉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얼마나 고민이 되는지. 어머니 만류를 미련하게(?)도 뿌리치고 일요일만 되면 버스를 타고 정릉에서 필동으로 오직 교회출석을 위해 다녔고, 때로는 어린이 예배가 거의 끝났는데도 친절하신 우리반 여선생님은 내 심정을 잘도 헤아리시고 출석인 동그라미표를 나 보는데서 시원스럽게 그려 주셨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리고 집이 멀다고 예배가 끝나면 그 양식 귀한 때 그 선생님의 어머니가 달갑지 않은 눈치를 주는데도 집에 데려가 점심을 먹여 보내시곤 하셨다. 그렇게 친절하신 선생님 덕분에 나는 일요일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그 먼 교회를 다녀서 그해 12월 크리스마스 때 그렇게 소원하던 화판을 받고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난후, 선생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집에서 가까운 정릉교회로 적을 옮겨서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친구따라 교회를 다녀도 되느냐고 어머니께 여쭈었을 때, 한참이나 망설이시다가 “그래, 안다니는 것보다는 낫겠지”하시던 말씀의 깊은 뜻을 그 후 우리 교회에 들어온 16년 후에야 비로서 알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두분다 평양과 강서에서 자라신 분이시고 어머니(임안심집사)의 할아버지(임장로님)께서 선교초기에 SDA를 받아드려 신앙을 시작하셨고 딸과 손녀를 모두 기차타고 다녀야하는 순안의 義明학교(삼육대학교 전신)에 보내셨다. 어머니께서는 할머니가 늦게 나으신 연배가 비슷한 고모 두분(임옥빈, 임옥순집사)과 순안에 있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셨는데 할머니로부터 고모들과는 차별대우를 많이 받았다고 섭섭해 하셨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께서 신앙도 잘하지 않고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아 외할머니까지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바람에 어머니께서는 공부는 잘했지만 근로도 하며 학창시절이 참으로 어려우셨다고 서운해 하셨다.
 학교를 졸업하신 후 초등학교 교사를 하시다가 아버지를 만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셨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대학에 다니시고 어머니는 양재를 가르치는 전문학교에 다니시다가 오빠를 임신하게 되어 그만 두시고 평범한 여인의 길을 걸으며 슬하에 4남매를 두셨다. 몸이 워낙 약하셨던 어머니는 아이를 낳을 때마다 임신중독증으로 거의 사경을 헤메셨다고 들었으며 부지런하신 외할머니는 딸의 산후조리를 완벽하게 해 주셔서 그나마도 어머니는 산후의 후유증은 전혀 없으시다고 자랑(?)하셨다. 3남매 중에 막내이신 아버지는 부지런하시고 적극적이셨으며 매우 가정적이셔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고 어머니는 행복한 아내로 10년의 짧은 기간 함께 사셨는데 무엇이나 가장 좋은 것으로 입고 지니셔서 자존심이 매우 강하셨단다. 피아노도 치시고 노래도 잘 부르셨다. 그러나 그렇게 좋으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비극의 순간을 맞게 되면서 우리 가정은 가지고 있던 좋은 것들을 내다 팔아 한동안 생계를 유지하셨고 필동의 그 큰집에서 작은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교회에 잘 안나가시다가 혼자되시면서 우리가 학교에 간 뒤 교회에 가셨다가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집에 계셨기에 어머니가 재림교회 교인인 것을 우리가 어렸을 때는 잘 몰랐다. 서울에 교회가 두개(회기동과 청진동)밖에 없었고 정릉으로 이사 간 뒤 어느 토요일(공휴일이 었음)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여느때와는 달리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외출하시는 어머니를 따라 돈암동의 어느 길가 집(아주 작은 예배소)으로 갔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후 까맣게 잊어버렸고 오빠와 나는 토요일에는 학교에 가고 일요일에 돌로 지은 큰 교회인 정릉장로교회(지금도 있음)에 잘 다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입시 준비로 많이 결석했었고 K여중에 합격한 뒤 6학년 반사 선생님께 자랑을 했더니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칭찬해 주셨다. 중학교 때는 교회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고 일요일마다 친구와 함께 피아노레슨을 받으러 다녔던 기억이 생생할 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수업이 거의 끝날 무렵 교실 스피카에서 흘러 나오는 공지사항에 우리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데모가 심해 광화문에 있던 우리 학교는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어 총소리와 함께 교통이 두절되었으니 가까운 친척집이나 아는 집에서 며칠간 머물러야 하고 집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서대문에 사시는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데 길가에 피를 빗자루로 쓰러 버린 흔적이 확연했고 이기붕씨 집은 불에 타서 시커멓게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서대문 로타리에는 군인들이 사면으로 총을 겨누고 7시가 통행금지니 서둘러 집에 가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얼마나 무섭던지 마치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았고 엄마 얼굴이 어른 거리며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 댁에서 3일 만에 걸어서 종로를 지나 집으로 가는데 파출소마다 불에 타서 엉망이었고 학생같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허름한 찦차 지붕까지 올라타고 소리를 지르며 돌아 다녔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닿으니 엄마가 반갑게 맞아 주셨고 당분간 휴교조치가 내려져 집에서 마음 놓고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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