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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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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성경에서 일요일이 주일로 기념된 일이 있는가?
  >>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칼럼  >  오만규  >  시간의 성소, 공유와 상생의 천국
 

 

 제칠일 안식일 : 하나님이 자신의 영원성을 사람과 공유하는 시간
 성경에서 “거룩한”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단어 “카도쉬”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곳은 창조의 이야기가 끝나는 창세기 2장 3절이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여 거룩하게 하였다.”는 구절이다. 인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부분에서 성경은 물질적인 공간의 어떠한 대상에게도 거룩함의 특성을 부여하지 않고 그대신에 비물질적인 시간인 제칠일 안식일을 세상에 있는 유일의 거룩한 대상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이 거룩하게 되는 토대는 무엇이며 안식일의 거룩성은 어떻게 부여되었는가? 안식일이 거룩하게 되는 토대는 하나님의 계심(현존)이며 하나님이 창조의 일곱째 날로 내려오심으로써 안식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가 되었다. 그런데 만약 일곱째 날이 하나님의 현존에 의해 거룩한 안식일로 구별되지 않았다면 인간은 어떤 운명의 삶을 살아야 했었는가? 자신의 현존으로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현존으로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일곱째 날이 거룩한 안식일로 구별되지 않았다면 인간은 안식이 없는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안식일에 참여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은 영원으로부터 소외된 삶과 무상한 시간성에 얽매인 삶을 뜻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없음으로만 흘러가는 시간과 더불어 자신의 모든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고 끝내는 자신의 존재마저 상실하게 되는 불안에 사로잡힌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시간성의 어두운 제약을 벗어나 더 이상 불안이 없는 구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성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비로우신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영원성에 참여시키고자 하여 시간 중에서 일곱째 날(제칠일)을 선택하시고 그 시간으로 내려오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있는 곳에 사람도 있게 하기 위해서는(요한복음 14장 3절 참조) 자신을 낮추어 사람이 있는 시간 안으로 내려와 사람과 더불어 자신의 영원성을 공유해야 했으며 이로써 인간은 무상한 시간성의 제약을 벗어나 구원의 삶을 누리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신의 현존을 통해 제칠일을 거룩한 안식일로 구별함으로써 제칠일 안식일은 시간의 성소가 되어 물질적인 공간의 성소와 구별되는 다른 특성의 날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원성에 참여하여 무상한 시간성으로부터 자유 하게 하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독특한 시간관의 하나는 모든 시간은 수량적인 크기가 같다고 하여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루가 24시간으로 구성되었다고 해서 모든 하루가 꼭 같은 하루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간의 세계가 다양한 크기의 사물들로 구성되었듯이 시간의 세계도 각각 다른 크기의 시간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공간의 세계에 길이가 다른 강들과 높이가 다른 산들이 있듯이 시간의 세계에도 작은 시간과 큰 시간이 있고 보통 날들과 특별한 날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안식일은 큰 날 중에서도 특별히 큰 날이다. 하나님의 세계 창조를 기념하는 날로서, 하나님이 시간 안에서 사람과 더불어 자신의 영원성을 공유하는 날로서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값없이 부여받은 영원성의 은혜를 다른 사람과 더불어 공유하게 하는 날로서 안식일은 큰날이 되었다.
 하나님이 안식일로 오셔서 자신의 영원성을 인간과 공유하시게 됨으로써 안식일의 시간성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도 달라졌다.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무상한 존재로 만들었던 시간의 보편성이 안식일 안에서는 거꾸로 하나님이 자신의 영원성을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끼치게 하는 수단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불행을 안겨 주었던 시간의 보편성이 안식일에서는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행복을 안기게 하는 능력으로 달라진 것이다.하나님이 자신의 영원성을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안식일로 내려오심으로써 안식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성을 공유하는 날일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공유하는 날이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안식일의 공유성에 기초하여 지향하는 공유와 상생의 삶
 안식일은 시간의 성소로서 공간의 성소와 다른 여러 특성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모든 소유를 함께 나누게 하는 안식일의 공유성이야말로 그 어떤 것들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들의 본성을 잘 대표하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만약에 안식일의 은혜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부여되고 ‘돈 없는 자도 와서 돈 없이 값없이 사라.’(이사야 55장 1절 참조)고 하는 차별 없는 은혜로서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나라의 은혜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의 가장 중요한 특성도 다른 어떤 것에서보다는 자신의 소유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려 하는 삶의 방식에서 나타난다고 할 것이다.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은 “믿는 무리가…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는(4장 32절) 현상을 오순절의 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소개하였다.
 그런데 안식일의 공유성은 시간의 보편성에 기초하고 있는 특성이다. 그래서 안식일의 공유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간과 차별되는 시간의 공유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그러면 공유성에 있어서 시간은 어떻게 공간과 다른가? 우리가 실제적인 생활에서 경험하는 공간과 시간의 가장 큰 차이는 공간이 근본적으로 소유의 대상인 반면에 시간은 우리가 거쳐 갈 뿐지배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대상이라는 점에 있다. 모든 사람은 각각 공간의 한 부분을 독점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반면에 시간은 어느 한순간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 의해 독점적으로 점유될 수 없다. 나에게 속하여 있는 순간은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속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오직 모든 사람들에 의해 공유될 수 있을 뿐이며 어느 한순간도 누구에 의해 배타적으로 소유될 수 없다.
 예수님은 일찍이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누가복음 12장 15절 참조)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고 생각하고 소유를 위해 혈안이 되고 있으며 소유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의 적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소유가 독점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공간의 세계에 국한된 것이다. 시간의 세계에서는 독점적 소유가 불가능한 한편 오직 공유로써만 점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특정의 시간을 독차지하거나 다른 사람의 점유를 막기 위해 서로 경쟁하거나 다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새해 첫날을 기념하기 위해 정월 초하루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수만 명이 넘는다는 뉴스를 들었다고 해서 힘없는 사람들이 정월 초하루에 들어가기가 어렵겠구나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느 누구도 정월 초하루의 시간을 배타적으로 점유할 수 없기 때문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몰려 들어간다고 해도 정월 초하루의 시간은 자신의 본성에 의하여 마치 한 사람도 들어가서 점유하지 않은 듯이 빈자리가 남아 넘쳐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또 시간의 나라는 거리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어디에서도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이 나라에 접근하는 일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이익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시간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첫 번째 자리나 첫 번째 줄을 차지한다. 어느 누구도 차별적으로 두 번째나 세 번째 자리로 밀려나는 일이 없다. 시간의 나라는 첫 번째 자리만 있는 나라이고 두 번째 자리가 있을 필요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시간의 나라에는 두 번째 자리가 필요 없는가?
 시간의 나라에서는 어느 한 부분도 어떤 한 사람이나 특정의 무리들가 배타적으로 점유할 수 없고 오직 모든 사람과 공유하는 형태로만 점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첫 번째 자리의 시간은 자체의 무한한 본성으로 말미암아 제아무리 많은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자리가 부족하여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발생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제칠일 안식일은 모든 사람에 의해 공유되는 방식으로만 점유되는 특성을 가진 시간의 나라로서 공유와 상생을 지배 원리로 삼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대표한다. 생존을 위해서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경쟁자와 적수가 되어야 하는 세상이 아니다.그런데 안식일이 나타내는 공유와 상생의 원리는 비록 부분적이라 할지라도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마태복음 6장 10절 참조).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들은 물건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대신에 함께 공유해도 아무런 부족이나 불편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재산을 공유함으로써 시간성과 공간성의 제약을 벗어나 하나님의 영원성에 참여하는 천국의 삶을 경험한다.
 그뿐 아니라 세상의 경제학자들 중에서도 21세기의 경영 전략으로 치열한 경쟁을 당연시하는 ‘레드오션(유혈의 붉은 바다)’의 전략 대신에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푸른 바다)’의 전략을 권고하는 학자들이 등장하였다.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성을 공유하는 안식일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경쟁 없는 ‘푸른 바다(블루오션)’의 시장 공간이 전혀 비현실적인 세계가 아니다. 공유와 상생의 원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을 공유하는 신자들에게 관념적인 이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삶의 원리이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에서도 그 구체적인 실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마도 구약 성경에서 안식일이 상징하는 공유와 상생의 삶을 극적으로 체험한 대표적인 사람은 엘리야 선지자의 시대에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살았던 과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부는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가뭄 속에서 양식을 다 소비하고 남아 있는 양식이라고는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남아 있는 양식으로 자신과 아들을 위해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생각한 끝에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는데 이 과부의 사정을 알게 된 선지자 엘리야가 이 과부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으로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해 만들라.”고 말했다. 그리고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을 먹었으나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다’(열왕기상 17장 8~16절 참조).
 신약 성경에도 안식일이 가르치고 있는 공유와 상생의 원리가 믿는 사람들의 생활에 실천되고 있는 실례들이 소개되고 있다.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순절 교회 신자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없어서…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사도행전 4장 32, 34절 참조).
 또 다른 실례의 하나로 예수님이 배고픈 오천 명의 군중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신 기적의 이야기가 있다. 제자들로부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 뿐”이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말씀하셨을 때 공간 세계의 제한적이고 닫힌 경험밖에 모르는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몇 사람의 입에나 풀칠을하겠는가 하고 생각했겠지만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무리에게 주니 여자와 어린이와 남자 어른 오천 명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넘쳤다(마태복음 14장 13~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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