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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 칼럼
  > 김명호
  > 오만규
  >> 불굴의 삶을 이끄는 생명력의 원천
  >> 왜, 일곱째 날일까?
  >> 제칠일 안식일, 일보다 더 소중한 가치의 날
  >> 인류 최초의 성소, 안식일
  >> 시간의 성소, 공유와 상생의 천국
  >> 안식일과 십계명의 관계
  >> 안식일 계명과 노동
  >> 주말 휴일과 성일의 기원으로서 제칠일 안식일
  >> 안식일 계명과 생명의 연대 의식
  >> 안식일, 언약의 기념일
  >> 안식일의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해당되는가?
  >> 안식일과 자유와 ‘오늘’
  >> “안식일을 지키고… 성소를 공경하라”(레위기 19장 30절)
  >> “네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레위기 19장 3절)
  >> “안식일을 준수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가정을 거룩하게 하라”
  >> “안식일을 준수하여 우상 숭배를 배척하라”
  >> 예수님과 안식일 ①
  >> 예수님과 안식일 ②
  >> 예수님과 안식일 ③
  >> 예수님은 안식일을 폐했거나 다른 날로 변경하셨는가?
  >> 예수님의 구원은 안식일을 무력화시켰는가? 회복시켰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대해 어떤 모범을 남겼는가?
  >> 신약 성경에서 일요일이 주일로 기념된 일이 있는가?
  >>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칼럼  >  오만규  >  제칠일 안식일, 일보다 더 소중한 가치의 날
 


 태초의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 일손을 내려놓았는가?
 하나님이 창조 주간의 일곱째 날에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신’것은 피곤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하시던 일을 마쳤기’ 때문이었다(창세기 2장 2절 참조). 더 할 일이 없어서 일손을 놓았던 것이다.일의 지나침은 일의 모자람 못지않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모든 일을 그친’ 배경에는 일의 지나침을 ‘지양하려는’ 목적 외에 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향하려는’ 목적이 함께 있었다. 예수님께서 태초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제정되었다(마가복음 2장 27절)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그 하시던 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의 무엇을 ‘위하여’ 일을 중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맥에서 예수님께서도 후에 바리새인들과 안식일 문제로 논쟁할 때 안식일인 ‘이제까지 내 아버지께서 일하신다.’고 말할 수 있었다(요한복음 5장 17절 참조). 여섯 날의 일은 선하고 의로운 것이지만 일보다 더 높은 삶의 경지가 있으며 제칠일의 안식은 바로 삶의 그 같은 경지이다. 그리고 하나님이시라 할지라도 그 같은 생명의 경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하던 일을 그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제칠일에 하나님이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셨다.’는 구절의 요지라 할 것이다.
 만약 ‘제칠일의 안식’이라는 것이 단지 ‘일의 그침’이고 ‘행동의 그침’이 그 뜻하는 것의 전부라면 그런 안식은 생명의 안식이 아니라 죽음과 같은 안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안식은 마땅히 예수님이 그렇게 했듯이 배척해야 할 것이다. 제칠일의 안식은 결코 죽은 사람의 안식 같은 것이 아니며 산 사람이 죽음으로 가기위해 추구하는 안식도 아니다. 오히려 죽어 가는 사람이 살기 위해 추구하는 안식이며 산 사람이 여섯 날 동안 일할 때조차도 경험할 수 없었던 생명의 더 높은 경지로 들어가기 위해 추구해야하는 안식이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에게 일보다 더 좋고 더 높은 생명의 경지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 활동의 보람을 기뻐하는 경지이며 자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축복하는 경지였다. 자신이 창조하신 만물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 같은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경지였다. 사도 바울이 역설했듯이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사업이라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니다”(고린도전서 13장 2절). 진실로 율법의 완성이 사랑에 있듯이(로마서 13장 10절 참조), 제칠일 안식의 완성이 사랑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완성 또한 사랑에 있었다.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일을 쉬”어야 하는(히브리서 4장 10절) 이유도 다를 것이 없었다.사람이 죄로 타락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는 인간의 삶이 수고로 가득 찬 것이 되었기 때문에 제칠일에 사람이 안식해야하는 일차적인 목적도 삶의 수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어야 했다.그러나 사람이 죄 없이 에덴동산에서 살던 시절에는 사람의 생활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것이 아니었으므로 제칠일 안식의 일차적인 목적도 삶의 수고를 내려놓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자기가 하던 일들을 ‘그쳐야 하는’ 오직한 가지 목적은 여섯 날 동안 일을 할 때보다 더 높은 경지의 삶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즉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기쁨과 거룩함에 참여하고자 함이었다.
 진실로 태초의 제칠일에 하나님이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셨다.’는 말은 ‘마치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푸는 것처럼’(마태복음 22장 2절 참조) 하나님이 제칠일에 ‘그 지으신 사람을 위하여’(마가복음 2장 27절 참조) 잔치를 베풀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을 축복하고 만물이 또한 자신들에게 부여된 생명의 기쁨을 누리는 생명의 잔치날이었다. 따라서 안식일의 신앙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하는 사실은 안식일은 일차적으로 생명의 날이며 사람들이 안식일의 구별을 통해 찬양하는 하나님도 다른 누구가 아니라 생명의 창조주라는 사실이다.
 당연한 논리로, 안식일의 하나님이 생명의 하나님이시라면 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안식일의 신앙을 거역하는 최대의 죄는 무엇이되겠는가?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은 생명을 해치는 일일 것이며 생명이 곧 생활이라면 생명을 해치는 일은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한탄하고 등한시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 반면에 안식일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안식일의 신앙에 충성하는 길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이 태어나게 한 모든 생명을 존귀히 여기며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사학자인 데이비드 랜즈 교수는 “세상에서는 일이 잘못되었을 때도 삶에 대해 긍정적인 낙관주의자들이 승리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 같은 태도가 성취, 향상 그리고 성공의 길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삶의 긍정적인 태도야말로 안식일의 신앙이 가르치는 중요한 지침이 아닐 수 없다.

 안식일의 인간관 : 하나님이 사랑하기 위해 창조한 인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걱정되는 현상중에 하나는 우리 주변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과 의사들에 따르면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은 대부분 자신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자신의 일생을 무가치하게 생각하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한평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생로병사를 포함하여 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겠다 싶은 경험들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일리아드>에서 제우스신은 “내가 생각할 때 땅 위에서 숨 쉬고 사는 만물 중에 인간만큼 비참하고 가련한 존재는 없다.”고 말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도 “인생으로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가장 좋으며 죽음이 삶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삶의 의욕을 꺾는 여러 가지 곤경에 직면하면서도 끝내 삶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던 사람도 많다. 구약 성경의 시편 23편에서 시인은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1, 4, 6절 참조)고 노래하였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인간 승리의 삶을 살아 낸 헬렌 켈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인생이 얼마나 경이로운 순간으로 가득 차 있는지에 대해 새삼스레 경탄을 금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인생관의 이 같은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어떤 성격의 초월자가 자신의 운명을 주관하고 있다고 믿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종교관의 차이도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 할 것이다. 인간을 가장 비참한 존재로 인식하며 삶을 죽음보다도 못한 것으로 믿는 인생관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와 같은 잘못된 종교관에서 비롯하는 경우도 많다. 바빌로니아인들의 창조 신인 마르둑(Marduk)은 자신을 대적하는 티아마트(Tiamat) 신을 죽인 후 그 신체의 한쪽으로 하늘을 만들고 남은 한쪽으로 지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신들의 거처로 바빌론이라는 도시를 건설하기로 작정하고 자신에게 패배한 신들을 그 건설 공사에 동원시켰다. 쉼 없는 노예 신세로 전락한 신들은 마르둑에게 그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을 간청하였으며 결국 마르둑 신은 신들을 대신하여 노역에 종사할 존재로 ‘사람’을 창조하였다. 대부분의 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폭군적인 신에 의하여 노예의 운명으로 세상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일생 동안 비참한 노역에 신음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칠일 안식일은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와는 전혀 다른 창조주의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바빌로니아인들의 것과 전혀 다른 낙관적인 인생관의 토대가 되었다.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신들의 노예로 창조한 마르둑 신과는 다르게 사람을 만물 중에 가장 존귀한 존재 곧 창조주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장 27, 28절)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제칠일을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였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이 지으신 땅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창세기 1장 31절 참조). 그래서 그 땅의 어느 곳도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으나 사람을 심히 사랑하는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특별한 동산을 추가적으로 창설하시고 사람을 ‘거기 두시었다’(창세기 2장 8, 9절 참조).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창설로도 사람의 생존 기반이 완벽해졌다고 판단하지 않으셨다. 에덴동산의 창설로 사람을 위한 최상의 공간적 조건이 마련되었지만 아직 인간의 시간적인 삶을 위해‘시간 속의 에덴동산’과 같은 특별한 시간은 마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시간 속의 에덴동산’같은 날로 제칠일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그리고 제칠일 안식일의 제정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 사업은 완성되었고 인간을 지극한 사랑으로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모습도 제칠일 안식일의 제정에서 드디어 온전히 나타났다.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삼아 그날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하신 것도 그날로 말미암아 사람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고자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제칠일을 ‘복 주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제칠일에 자신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그날로 하여금 사람의 생명력을 왕성하게 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러한 뜻에서는 잔칫날이야말로 복 받은 날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왕성한 생명력과 풍요로움만으로 사람의 참다운 행복이 이루어질 수 없고 같은 이유에서 사람을 위한 진정한 잔치도 될수 없다. 사람은 만물 중에서도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신성한 영적 존재로서 결코 “떡으로만” 살 수 없기(마태복음 4장 4절) 때문이다. 왕성한 생명력과 함께 사람의 신성한 존엄성이 존중되고 신성한 존재로서의 삶 곧 사람의 성화된 삶을 진작시키는 것이 될 때 비로소 사람을 위하는 진정한 잔치가 된다고 말할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칠일을 복되게 하시고 또 거룩하게 하시었다. 안식일을 왕성한 생명력의 날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신성성을 진작시키는 날로 만드심으로써 안식일이 인간을 위한 진정한 잔칫날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이로써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장 1절)라고 기도하셨듯이 하나님이 사람을 ‘영화롭게 하시는’ 잔칫날이 되었으며 사람이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잔칫날이 되었다.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여김으로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 또한 안식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여 그들을 ‘땅의 높은 곳에 올려 야곱의 기업으로 기를 것’이라 하였다(이사야 58장 13, 14절).

 안식일의 신앙 : 생명의 신앙
 안식일의 신앙은 생명의 신앙이다. 생명의 주를 찬양하게 하는 신앙이며 생명을 사랑하고 생활을 기뻐하게 하는 신앙이다. 심지어 자신과 가정과 주변에서 수 없이 생명의 파괴를 경험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생명과 삶에 대한 긍정적 신념을 잃지 않게 하는 신앙이다. 그리고 안식일마다 우리에게 보통 날들에서 겪게 되는 온갖 비열하고 비관적인 경험들에 맞서 용감하게 삶의 숭고한 목적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켜 주며 또 우리 안에 있는 공격성과 우울한 감정을 변화시켜 우리 안에 안정감과 밝은 기운을 불러일으켜 줄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거짓된 근심들을 내던질 수 있게 하고 불가피하게 직면하게 되는 걱정과 슬픔들을 의연히 견디어 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내면과 주변에서 매정함과 냉랭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도 우리 안에 따뜻한 온정을 불러일으켜 주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인간적인 사랑이 실패한 형편에서도 사랑의 동기를 잃지않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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