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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 칼럼
  > 김명호
  > 오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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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과 안식일 ①
  >> 예수님과 안식일 ②
  >> 예수님과 안식일 ③
  >> 예수님은 안식일을 폐했거나 다른 날로 변경하셨는가?
  >> 예수님의 구원은 안식일을 무력화시켰는가? 회복시켰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대해 어떤 모범을 남겼는가?
  >> 신약 성경에서 일요일이 주일로 기념된 일이 있는가?
  >>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칼럼  >  오만규  >  예수님의 구원은 안식일을 무력화시켰는가? 회복시켰는가?
 

 

 그리스도에 의한 안식과 안식일 안식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 29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안식과 제칠일 안식일의 안식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활동과 제칠일 안식일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 것인가?
 예수님은 이에 앞서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을 선포했던 나사렛 회당의 안식일 설교에서도 하나님의 종에 의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약속하는 이사야 61장 1, 2절과 이사야 58장 6절의 안식년 구절을 선택하여 읽으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장 18절). 예수님은 왜 이사야서의 안식년 구절을 통해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을 선포하셨던 것인가?
 구약 시대에 안식일과 안식년에 행해졌던 중요한 일의 하나는 백성 중의 눌린 자들에게 ‘해방’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안식일에 성전 봉사와 희생 제사를 강화한 것(제물로 평일에는 어린양 둘을 바쳤으나 안식일에는 넷을 바쳤다. 민수기 28장 8, 9절)은 모두 하나님이 안식일에 당신의 백성들을 죄와 죄책의 짐으로부터 특별히 사면하여 주시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었다. 안식일은 백성들이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용서의 안식을 체험함으로써 새 출발을 더욱 새롭게 하는 기회의 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이사야서 61장 1, 2절과 58장 6절을 찾아 읽음으로써 그동안 안식일 신앙을 통해 표상적으로 제공되어 왔던 구원의 안식을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이라고 선언했던 것이며,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11장 28, 29절에서도 그리스도가 오래 고대해 온 메시아적 안식일 안식의 실현을 사람들에게 주장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사명의 선언으로서만 안식일 안식의 실현을 주장했던 것이 아니라 직접 안식일에 18년 동안이나 “귀신 들려 꼬부라져 지내던” 여인 등 “사탄에게 메인 바 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여 그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자신들이 육체와 정신에서 사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날로 경험하고 기억하게 함으로써 이사야서의 “이 글이 오늘날 너의 귀에 응하였다”(누가복음 4장 21절)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지상봉사를 다 마치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마태복음 19장 30절) 날도 안식일의 예비일인 금요일 오후였으며 그다음 날인 안식일에는 무덤에서 쉬셨다(마가복음 15장 42, 46절; 누가복음 23장 53, 54절). 하나님의 창조 사업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도 안식일의 쉼으로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태초의 안식일 안식이 구약 성경에서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누리는 안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되는 종말론적인 안식을 예표 하게 되었는가? 창세기 2장 2, 3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6일 동안에 세계 창조를 다 마치시고 일곱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으며 그날을 복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안식일이라는 특별히 축복받은 날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특별히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 동산 안에 생명나무가 나게 하신 것과 같은 성격의 것이었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만드신 물질세계가 에덴동산과 생명나무의 창조로 비로소 부족할 것이 없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게 되었듯이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만드신 시간의 세계도 제칠일 안식일의 제정으로 그 절정의 조건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덴동산이 눈에 보이는 물질의 공간이었던 반면에 안식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시간이면서 그 시간의 차원이 자유와 평화와 기쁨과 거룩함의 총화를 뜻하는 ‘안식’이었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는 에덴동산이 에덴동산일 수 있었던 핵심적인 특성은 공간적인 에덴동산 자체보다는 비공간적인 안식일의 높은 영적 특성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제칠일의 안식으로서 자신의 창조적 경험의 완성과 완전에 도달하시었듯이 인간도 자유와 평화와 기쁨과 거룩의 안식을 하나님과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창조적인 삶과 영적인 삶에서 완성과 완전의 경지로 나아가게 될 것을 의도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인류의 상황이 돌변하여 사람에게 생명의 온전한 기쁨을 주시려 했던 하나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인류는 이제 공간 세계에서 에덴동산의 차원을 상실하게 되었고 시간 세계에서는 안식일의 차원이 박탈되었다. 그리고 안식일 차원의 상실이란 인류의 시간적 경험에서 ‘안식’의 차원, 곧 자유와 평화와 기쁨과 거룩함의 삶이 인류에게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음을 뜻했다. 범죄 이후에도 제칠일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은 인류에게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죄 된 심령의 사람으로서는 제칠일이라는 시간의 ‘안식’이라는 경지에 도달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인류에게 에덴과 안식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일하기 시작하셨고 이로써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으니 곧 구속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세계 창조의 일을 ‘다 마치시고’ 안식하셨지만 이제 인류가 범죄로 구원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안식에 머물러 계실 수 없었고 오히려 창조의 6일에서처럼 인류를 구원하는 재창조의 일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시는 것을 트집 잡아자신을 박해하려 하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장 17절)고 하셨는데 여기서 ‘내 아버지의 일’은 우주를 통치하거나 유지하는 등의 그 어떤 일들이 아니라 범죄 한 인류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낙원과 안식을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인류를 구원하는 재창조의 일이 ‘다 이루이지는’ 그때에 이르러 하나님은 태초에 창조의 일을 ‘다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던’ 때처럼 ‘안식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이 안식과 더불어 우주적인 안식일이 비로소 회복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인이 됨으로써 에덴에서 죄 없이 제칠일에 하나님과 함께 누리던 ‘안식의 삶’, 곧 자유와 평화와 기쁨의 거룩한 삶을 더 이상 향유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인간으로 하여금 비록 불순한 인간의 조건에 제한되는 안식이라도 누리도록 하기 위해 두 가지 조치를 취하셨다. 하나는 일곱째 되는 날마다 일을 하지 않게 함으로 무거운 수고에서 벗어나 “숨을 돌리도록” 하는 일이었으며(출애굽기 23장 12절), 다른 하나는 제칠일 안식일을 인류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참된 안식의 표징으로 삼게(출애굽기 31장 17절) 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범죄 이후에 제칠일 안식일은 죄 된 인류가 7일마다 하루씩 일상의 일을 중지함으로써 무거운 수고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출애굽기 23장 12절) 불완전한 쉼의 날이면서 태초와 마지막 구원의 시대에 인류가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것을 표징 하는 날로 기념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서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을 안식년 메시지에 담아 선포하게 된 것이나 마태복음 11장 28, 29절에서 사람들을 자신의 안식으로 초청하신 것은 모두 안식일의 이 같은 종말론적 인식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종말론적인 안식과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
 하나님이 태초의 안식일에 약속했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인류가 오랫동안 고대했던 안식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되기에 이르렀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안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에 의한 안식과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는 어떻게 연관되는 것인가? 안식일이 그리스도에 의한 최종적인 안식의 그림자이고 모형이니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안식일의 역사적 역할은 끝났고 그래서 더 이상 안식일을 준수해야 할 이유나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인가? 안식일에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구원을 표상하는 일 이외의 다른 기능은 없는 것인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제칠일 안식일은 인류가 범죄한 이후에 제정된 제도가 아니다. 죄 없는 인류가 에덴에서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하면서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기념하던 날이다.
 안식일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예표 하기 시작한 것은 인간이 범죄로 구원을 상실하게 된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인류가 범죄 한 이후에도 제칠일이라는 시간 자체나 제칠일에 하나님의 세계 창조를 기념하는 활동은 인류로부터 박탈된 것이 아니었다. 인류가 범죄로 상실한 것은 에덴에서 제칠일에 하나님과 공유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안식”, 곧 “너희 마음이 쉼을 얻는”(마태복음 11장 29절) 것이었다. 비록 제칠일이란 물리적인 시간을 안식일로 사용할 수 있다 해도 죄로 부패한 심령 때문에 인류는 이전에 하나님과 더불어 안식일에 누렸던 자유와 평화와 기쁨의 거룩한 안식을 누릴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이처럼 인류는 범죄 이후에 더 이상 제칠일에 안식일의 안식을 하나님과 공유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제칠일 안식일에 일상의 수고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세계 창조를 기념하는 특권은 계속 유지하였다. 그리고 인류의 구속 사업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성취된 이후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사무엘상 12장 24절)을 기념하는 날로서의 안식일의 기능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뿐 아니라 하나님의 재창조라 불러 마땅한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까지 기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주제의 바른 이해를 위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봉사는 그 목적하는 것이 안식일을 폐기하는 것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과 더불어 제칠일 안식일을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시키는 것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의도하셨던 것은 인간의 범죄로 상처를 입고 무력해진 안식일을 태초에 인간이 죄 없이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안식일로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복음서는 사실상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준수를 무효화함으로써가 아니라 안식일을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경험하고 또 그 구원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기회의 시간이 되게 함으로써 메시아적 안식일 안식과 해방의 표상학적이고 종말론적인 기능을 성취시켰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도 안식일의 준수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안식일 준수가 어렵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당부를 남기셨다(마태복음 24장 20절).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속 봉사를 통해 태초의 안식일이 회복된 마당에서 이제 인류가 안식일과 더불어 할 일은 안식일의 준수를 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장 1절)는 사도 바울의 권고를 따르는 것이다.안식일마다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그랬듯이 태초의 안식일 안식을 마음껏 누리는 이 일 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인가? 히브리서의 기자도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 일을 쉬느니라”고 하였다(히브리서 4장10절). 히브리서 기자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이 제칠일에 창조의 일을 중단하셨던 본을 따라 사람도 제칠일에 일상의 일을 중단하고 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일을 쉰다’는 말의 뜻은 비유적으로 노예적 노동을 중지하는 것이나 악한 행위나 죄 된 활동을 중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의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우리는 “자기 일을 쉰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악하고 죄 된 행동으로부터의 중지’라고 해석한다면 마치 하나님이 제칠일에 악하고 죄 된 일을 쉬셨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히브리서 기자에게 있어서 안식일 준수는 단순히 제칠일에 일상의 일을 중단하는 것으로 그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한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주장했고 그 앞에서도 순종으로 결말 되는 믿음이 없으면 “저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히브리서 4장 5절). 칼뱅도 이와 관련하여 설명하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들의 내면에서 구원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내면을 비어 내기 위해 자신들의 일을 쉬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John Calvin. Leviticus of Christian Religion, 1972. Ⅱ. p.339). 안식일은 주말마다 하나님의 안식, 즉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안식을 믿음으로 자유롭게 경험하기 위해 일상의 걱정거리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기회의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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