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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안식일 치료 행위와 안식일 논쟁
 예수님의 안식일 논쟁들이 언제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먹었을 때처럼 바리새인들의 일방적인 공격에 의해 발생했던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원하셨다면 피할 수도 있었는데 예수님이 피하지 않음으로써 안식일의 논쟁이 발생한 경우들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 예수님이 안식일에 반대자들의 눈앞에서 병자를 치료함으로써 반대자들에게 안식일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였던 경우들이다.
 공관 복음서로 일컬어지고 있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보고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야적 생애를 시작할 때부터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했다. 마가와 누가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예배를 소란케 하자 그를 치료해 주신 사건을 기록하였으며(마가복음 1장 21~28절; 누가복음 4장 31~37절), 같은 안식일의 저녁 시간에 베드로의 집에서 그의 장모를 치료해 주신 일은 마태도 기록에 남겼다(마태복음 8장 14, 15절; 마가복음 1장 29~31절; 누가복음 4장 38, 39절). 그리고 공관 복음서의 기자 중 어느 누구도이 사건과 연관하여 안식일 논쟁을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때는 예수님이 별다른 시비 없이 병자를 치료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병자를 만날 때마다 유대교의 안식일 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치료해 주신다는 사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자 그들은 예수님의 안식일 치료 행위를 자신들에 대한 중대한 종교적 도전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로써 예수님도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자 할 때는 종교적 반대자들의 비판과 정죄를 각오해야 했으며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을 치료해 주었을 때 발생한 안식일 논쟁도 그러한 예의 하나였다(마태복음 12장 9~14절; 마가복음 3장 1~6절; 누가복음 6장 6~11절).
 공관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이 안식일에도 “한쪽 손이 마른” 병자가 회당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고”(마가복음 3장 2절; 누가복음 6장 7절) 있다가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마태복음 12장 10절) 예수님에게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하고 시비를 걸었다(마태복음 12장 10절). 미쉬나의 안식일 규칙에 따르면 생명이 위험한 병자나 부상자는 안식일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나 “생명이 위험한지의 여부가 불확실할 때 그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었다(미쉬나 요마 8:6). 그런데 손이 마른 중풍병은 생명이 위태롭지 않은 만성적인 질병이기 때문에 안식일의 예외적인 규정에 해당하지 않았으므로 만약 예수님이 그 중풍병자를 치료해 준다면 이것은 분명히 미쉬나가 규정한 안식일의 율법을 위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송사하려고 자신을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으면서도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을 회피하지 않으셨고 치료받아야 할 환자의 필요를 외면하지도 않으셨다. 병자의 치료는 자신의 메시야적 봉사와 안식일의 정신에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공관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먼저 중풍병자를 향해 “일어서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바리새인을 향하여 질문하셨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마태복음 12장 11절),“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마가복음 3장 4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무리들 앞에서 어느 쪽으로 대답하는 것도 이롭지 않다고 생각하여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였고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마가복음 3장 5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태복음 12장 12절)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병자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시고 병자가 내밀자 그 손이 회복되었다”(마태복음 12장 13절).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중풍병자가 기적적으로 치료받은 이 놀라운 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대신 오히려 즉각적으로 현장을“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였다”(마가복음 3장 6절; 마태복음 12장 14절). 그들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말로 대답하지 않았으나 이제 행동을 통해 “안식일에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다.”고 대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상 선을 행하는 것도, 생명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의미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것이었다.
 공관 복음서 중에서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예수님의 안식일 치료 사건들도 둘이나 있다. 그리고 그 하나는 “18년 동안을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서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를 예수께서 고쳐 주신 이야기(누가복음 13장 1~17절)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팔과 다리가 부은 남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누가복음 14장 1~6절)이다. 예수님은 어느 안식일에 회당에서 18년 동안 귀신에 잡혀 등이 꼬부라진 몸으로 고생하고 있는 여인을 목격하고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며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누가복음 13장 13절). 그리고 예수님은 이때도 논란을 피할 수 없으셨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보고 격분한 회당장이 감히 예수님을 직접 공격하지는 못하고 그 대신 무리들을 향해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누가복음 13장 14절)고 꾸짖었던 것이다. 회당장은 병 고치는 행위가 안식일 계명이 엿새 동안에는 허락하고 안식일에는 금지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무리 중에는 회당장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환자의 치료가 안식일 계명에 금지된 “일”이라는 인식은 안식일에 대한 중대한 오해라고 생각하고 회당장뿐 아니라 회당장의 말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 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고 반문하셨다(누가복음 13장 16절). 마구간에 묶여 있는 가축을 풀어 주는 일이 안식일에 합당하다면 18년 동안 귀신과 질병에 묶여 있던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해방시키는 것은 더더욱 합당한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예수님이 팔과 다리가 부은 남자를 안식일에 치료해 주신 사건은 예수님을 식사에 초청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서 일어났다. 예수님은 팔과 다리가 부은 사람이 자기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자 대적자들이 자신을 “엿보고 있다”(누가복음 14장 1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먼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병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라고 질문하셨다(누가복음14장 2, 3절). 그리고 그들이 잠잠하자 “그 병자를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누가복음 14장 4, 5절)고 하셨다. 구약 성경이 “네가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릴지어다”(출애굽기 23장 5절; 신명기 22장 4절 참조)라고 가르치고 있고 또 유대교의 율법도 가축들이 안식일에 도움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가르치고 있다면 어찌하여 인간은 안식일에 도움을 받지 말아야 하느냐라는 질문이었다.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예수님의 안식일 치료
 예수님의 안식일 치료로 말미암았던 여러 안식일 논쟁들 중에 두 사건은 공관 복음에는 없고 오직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중풍병자를 안식일에 고쳐 주신 일이며(요한복음 5장 1~9절)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치료해 주신 일이다(요한복음 9장).
 베데스다 연못은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있었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계셨던”(요한복음 5장 1절) 예수님이 한 안식일에 그 연못가에서 38년 된 중풍병자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신 후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으며 그 병자가 명령에 따라 일어서려 하자 “곧 치료되어 자리를 들고 걸어 나갈 수 있었다”(요한복음 5장 6, 8, 9절).
 그런데 예수님의 이 치료 행위는 유대교 랍비들의 안식일 규칙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안식일에 생명이 위중하지도 않은 중풍병자를 치료했을 뿐 아니라 병자에게 자기의 돗자리를 들고 가게 함으로써 랍비들의 율법에 금지된 39개 항목의 하나를 범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즉각 이 사실을 놓치지 않고 치료받은 사람을 향해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요한복음 5장 10절)라고 공격하였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중풍병자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는 이유로 더욱 “예수님을 박해하게 되었다”(요한복음 5장 16절).안식일에 랍비들의 안식일 규칙에 위배되는 “일을 행하신다”는 비난에 대해 예수님은 이전과는 다른 답변으로 자신을 변호하셨다. 하나님이신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장 17절)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이 답변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전제가 제시되고 있는데 그 하나는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이시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셨다”(요한복음 5장 18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신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장 17절)는 것이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이 대답으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으니 그 까닭은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었다”(요한복음 5장 18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주장을 신성 모독에 다름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찍이 “안식일의 주인”(마태복음 12장 8절)으로서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주장했었으며 여기에서도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동일한 일을 한다고 주장하셨다.
 하나님이 “이제까지 일하신다”는 예수님의 주장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특별하게 시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들도 하나님이 자연계와 우주를 통치하고 관리하는 일을 안식일에도 중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대체로 동의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신다”고 하신 말씀의 더 본질적인 뜻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요한복음 6장 29절)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인류를 위한 구속 사업을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창조의 일을 마치셨지만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구원을 위해 역사 속에서 “이제까지” 계속해서 일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예수님 또한 그 일을 안식일에 하고 있다는 말씀이셨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구속적인 활동은 안식일이어서 중단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일이어서 마땅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요한복음에 소개되고 있는 또 하나의 안식일 치료 사건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을 예수님이 고쳐 준 이야기이다(요한복음 9장). 이때는 단순히 말씀으로만 치료하신 것이 아니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한복음 9장 6, 7절)고 명했는데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긴 행위는 유대교 장로들이 안식일에 금지한 39개 항의 하나를 범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의 규칙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행위로써 예수님에 대해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다”(요한복음 9장 16절)라고 판단을 내리고 예수를 죽이려는 의논을 본격화했던 것이다(마태복음 12장 14절 참조).
 그러나 다른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 눈멀었던 사람의 치료를 보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나타난 것”(요한복음 9장 3절)으로 믿고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요한복음 9장 16절)며 예수님의 행위에 감동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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