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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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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식일을 준수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가정을 거룩하게 하라”
  >> “안식일을 준수하여 우상 숭배를 배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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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오만규  >  “안식일을 준수하여 우상 숭배를 배척하라”
 

 

 안식일 준수와 우상 숭배의 대립적 관계
 안식일 준수는 세 차례에 걸친 앞의 글들에서 살펴보았듯이 성소 공경, 부모 공경, 혼인 언약의 존중 등 여러 가지 다른 도덕적 가치들과 상생 관계로 조합을 이루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그 반대로 안식일 준수가 몇몇 특정적인 종교적 죄악이나 악행들과 더불어 특별하게 대척 관계로 조합을 이루는 경우들도 있다.그리고 그중의 하나가 바로 안식일 준수와 우상 숭배의 대립적 관계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우상 숭배가 안식일을 더럽히는 일로 이어지고 안식일 개혁이 우상 숭배의 근절로 이어지는 사례들을 많이 읽을 수 있다. 그 일례로 에스겔 20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의 입을 빌어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따라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다.”고 탄식하셨으며 레위기 19장 3, 4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공경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에 이어서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고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지나간 역사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식일 언약에 신실할 때 우상 숭배의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었으며 안식일 언약을 배반함으로써 우상 숭배의 유혹에 휘둘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경험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안식일 준수와 우상 숭배의 대척적인 관계는 두 가치의 본성적인 대립에서 비롯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안식일 준수의 계명은“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요한계시록 14장 7절)는 계명인 반면에 우상 숭배는 하나님 대신에 거짓 신들을 경배하는 신앙이다. 이 두 가치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6장 16절에서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주장했듯이 결코 양립할 수가 없는 것으로 성경에서 나타나고 있는 안식일 신앙과 우상 숭배의 대립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대쟁투 자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안식일 계명과 우상 숭배의 대립적 관계는 안식일 계명의 언약적 본성과 우상 숭배의 언약 파괴적 본성에서도 기초되고 있다.십계명은 그 하나하나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언약적 관계를 규정한 언약의 계명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안식일 계명은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십계명에서 선포된 인간의 모든 언약적 관계를 하나로 묶고 대표하고 있는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계명이다. 그리고 이 같은 안식일 계명을 정면적으로 반대하는 자리에 위치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적 관계를 파괴하는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죄악이 바로 우상 숭배인 것이다.안식일 계명은 그 본질적인 특성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출애굽기 31장 13절 참조) 언약의 계명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사람과 맺은 언약에 모두 성실하게 하여 사람을 신의와 정결의 삶으로 인도하는 신앙의 계명이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어 말한다면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 언약하셨으므로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린도후서 6장 16~19절)고 하는 신앙의 계명인 것이다.
 그런데 우상 숭배는 어떤 신앙인가? 성경에 따르면 우상 숭배는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안식일 신앙의 기능과는 정반대로 사람을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게 하는’(에스겔 20장 18절 참조) 반언약적(反言約的) 신앙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신성한 언약을 배반하게 하여 사람을 불신과 불의와 부정의 삶으로 인도하는 악한 신앙인 것이다.

 생명의 율례인 안식일 계명과 반(反)생명의 율례인 우상 숭배
 그런데 우상 숭배의 반언약적 본성과 능력은 사람을 불신과 불의와 부정의 삶으로 이끄는 것으로 끝나고 있지 않다. 우상 숭배의 언약 파괴적 본성과 능력은 반생명적(反生命的) 본성과 능력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안식일 신앙에 대립하는 우상 숭배의 정체는 이 같은 반생명적 특성에 의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상 숭배는 생명의 세계를 파괴하고 생명의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생명의 계명들에 대립하고 있는 반생명의 권세인 반면에 안식일 준수는 생명의 하나님을 구별하여 예배하며 생명의 십계명을 대표하는 생명의 계명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듯이 언약의 계명인 십계명은 또한 그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님이 사람에게 “살아라.”라고 명령하고 있는 ‘생명(生命)’의 명령들이다. 하나님이 세계의 창조와 더불어 사람에게 “너 있으라.”(창세기 1장 참조)라고 선포한 명령이며 하나님이 첫 사람 아담에게 각종 생명나무의 열매를 보여 주며 먹고 “살아라.”(창세기 2장 16절 참조) 하고 한 명령이며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보여 주며 “먹지 말고 죽지 말라.”고 당부한 명령이다.
 그리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순종하여 살라.”고 했던 명령들 즉 “…하라.” 하고, 또 “…하지 말라.”고 한 명령들(출애굽기 20장 3~20절 참조)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의 모든 선한 관계와 언약을 규정한 계명들로서 ‘사람이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생명을 얻게 하는’(에스겔 20장 18절 참조)생명의 계명이다. 그리고 안식일 계명은 생명의 계명들인 십계명 전체를 대표하는 계명이다.
 그런데 우상 숭배의 율례는 어떠한 율례들인가? 우상 숭배의 율례들은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안식일의 계명과는 반대로 사람들을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을 더럽게 하는’ 율례(에스겔 20장 18절 참조)일 뿐 아니라 사람이 지켜도 사람으로 하여금 ‘능히 살지 못하게 하는’(25절 참조) 율례이다. 세상 역사의 초창기부터 하나님이 사람에게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경계한 나무의 열매를 사람이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사람을 유혹하여 결국 사람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창세기 3장 1~19절 참조) 율례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의 세계를 파괴하기 위하여 태초부터 쉬지 않고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베드로전서 5장 8절) 사람을 위협하고 유혹하는 마귀의 종교인 것이다.
 진실로 사람의 사회적인 생명과 영적인 생명은 언약의 정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이고 영적인 주체인 인간은 언약을 지킴으로 살고 언약을 저버림으로써 죽는 것이다.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출애굽기 31장 14, 15절 참조)라고 명령한 것은 언약을 배반함으로써 그 사람의 영적인 생명과 사회적인 생명이 이미 끝났음을 선언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은 하나님에 대한 영적 간음(신명기 31장 16절; 사사기 2장 17절; 호세아 1장 2절 참조)인 우상 숭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서 간음의 죄가 사형으로 처벌되었듯이 우상 숭배의 죄 또한 사형으로 처벌된 것은 부부 관계의 언약이 파괴됨으로써 부부 관계로 살아온 사회적 생명이 끝나고 우상 숭배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온 사회적 생명이 이미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적 유일성과 비물체적 무한성을 옹호하는 십계명의 첫 세 계명
 지나간 역사에서 인류는 유한하고 육체적인 자신의 본성적 약점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神)보다는 산이나 나무나 돌, 또는 해, 달, 별 같은 시각적인 사물이나 물체를 신으로 경배하려는 경향을 많이 나타냈다.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성소에 눈에 보이는 신상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을 무신론자들로 오해하고 박해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인식은 신의 존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분’ 대신에 눈에 보이는 ‘그것’을 예배하는 방식을 자주 선택했던 것이다. 영이시며 만물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나와 당신’의 관계 곧 인격적이고 영적인 관계에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그것’의 관계 곧 물체적이고 비인격적인 관계에서 예배하려는 경향을 나타냈던 것이다.
 십계명의 첫 세 계명은 물체적인 인간의 이 같은 비영적이고 신성 모독적인 종교적 경향을 경계하는 명령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첫 번째 계명에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명령하셨고 두 번째 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셨으며 세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출애굽기 20장 3~7절). 그렇다면 이 세 계명이 의도하는 종교적 취지는 무엇인가?
 첫째 계명이 요구하는 종교적 취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되 마치 하나님을 여러 신들의 한 분이신 것처럼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존재들에 의해 나누어지는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마음과 뜻을 다하는(신명기 10장 12절 참조)전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계명의 종교적 취지는 사람이 하나님을 물질적인 표상을 통하여 경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와도 같다’고 할 수 없으며 무슨 형상으로도 그에게 비교할 수 없게(이사야 40장 18절 참조) 무한하시고 또한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요한복음 4장 24절) 한다는 것이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출애굽기 20장 4절) 누구나 또는 무엇을 ‘하나님과 같다’고 생각하여(이사야 40장 18절 참조) 그 ‘형상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애굽기 20장 4, 5절 참조)는 것이다. 하늘이나 땅이나 바다의 그 어떤 것들도 물체이며 유한한 것들이기 때문에 만약 이같이 유한한 사물이나 물체로 하나님을 형상화한다면 그것은 만물을 초월하시고 영이신 하나님의 신성을 심하게 왜곡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무한하신 하나님을 인간의 손에 의해 조종하고 지배할 수 있는 유한한 분으로 격하시키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세 번째 계명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처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물체나 사람이나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무한히 위대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성 모독적인 불경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십계명의 첫세 계명의 종교적 취지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초월적 유일성과 비물체적인 무한성을 옹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상 숭배의 예방책과 해독제로서 안식일 준수
 그런데 하나님의 초월적 신성을 옹호하는 세 계명에 뒤이어 안식일 계명이 넷째 계명으로 뒤따르고 있는데 이 안식일 계명은 명령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앞의 이 세 계명과 크게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앞의 세 계명은 모두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또는 소극적인 명령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네 번째의 안식일 계명은 “…하라.”는 긍정적, 또는 적극적인 명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앞의 세 계명은 사람들에게 영적이시고 무한하시며 또한 유일하신 하나님을 여러 신의 한 분으로 경배하거나 또는 어떤 거룩한 사물이나 물체를 통해서 경배하려 “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물체적인 예배를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거룩한 한 날 곧 제칠일 안식일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이리하여 안식일 준수의 명령은 거룩한 물체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우상 숭배의 유혹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예방책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우상 숭배에 대한 해독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의 저명한 종교 저술가의 한 사람인 엘렌 G. 화잇이 <그리스도와 사탄의 대쟁투>라는 기념비적인 그의 책에서 “안식일이 항상 신성하게 준수되어 왔었더라면, 무신론자나 우상 숭배자가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인식 때문이었다. 사도 바울이 이미 주장했듯이 안식일 신앙과 우상 숭배의 관계는 ‘의와 불법이 함께하지 못하고 빛과 어둠이 사귀지 못하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되지 못하는 것’처럼(고린도후서 6장 14, 15절 참조) 양립하는 것이 불가능한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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