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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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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식일을 지키고… 성소를 공경하라”(레위기 19장 30절)
  >> “네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레위기 19장 3절)
  >> “안식일을 준수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가정을 거룩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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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과 안식일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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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칼럼  >  오만규  >  “안식일을 지키고… 성소를 공경하라”(레위기 19장 30절)
 

 

 성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그 자체로 대단히 중요한 명령이어서 대부분의 경우 단독적인 명령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라”(레위기 19장 3절)든지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공경하라”(30절)처럼 안식일 명령이 다른 도덕적 명령을 동반하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는 단독적으로 제시되었을 때에 나타나지 않았던 안식일 계명의 또 다른 특성들과 의미들이 동반하는 명령들과 연계되어 드러나고 있다. 그리하여 이번 호부터는 안식일 명령이 성소, 부모, 혼인과 가정, 재림, 반(反)우상 숭배 같은 가치들과 결합될 때 나타나는 특별한 의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안식일 준수와 성소의 공경
 “안식일을 지키고 성소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2절)라는 레위기 19장 전체의 주제에서 비롯된 명령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살기 위해 마땅히 “안식일을 지키고 성소를 공경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 준수와 성소의 공경이 하나의 명령으로 묶여져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 되는 덕목의 하나로 제시된 것은 둘이 모두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하여 각각 ‘나의 안식일’, ‘나의 성소’라 부르는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안식일의 하나님이며 성소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안식일과 성소를 거룩히 구별하고 공경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고 자신들을 거룩하게 하는 중요한 행위의 하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명령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기위해서는 그들의 예배 생활이 안식일과 성소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뿐 아니라 이 두 중심축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신 것이었다. 즉 안식일과 성소의 결합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거룩하게 예배하는 최선의 시공간적 구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안식일만 지키고 성소를 공경하지 않다든지 성소만 공경하고 안식일을 존중하지 않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관점은 구약의 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교회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려면 성소를 더욱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성소를 공경하려면 안식일을 더욱 거룩하게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진실이기 때문이다.



 구속의 역사와 함께 진전된 안식일과 성소의 거룩함에 대한 경험적 지식
 그러면 안식일이 거룩해지고 성소가 거룩해지는 토대는 무엇이며 “안식일을 지키고 성소를 공경하라.”는 실천적 명령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안식일과 거룩한 성소에 대한 최초의 체험적 지식을 어떻게 얻었는가? 창세기 2장 2, 3절에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는 진술이 처음으로 등장하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시간과 같은 비인격적인 대상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창세기 전체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출애굽기에 이르러 하나님의 두렵고 영광스러운 현존이 공간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표출되면서 비로소 안식일의 복됨과 안식일의 거룩하게 됨의 실재와 의미가 역사상 처음으로 그 신비의 베일을 벗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어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엄하게 표출된 대표적인 경우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십계명을 선포할때였다(출애굽기 19장 16~19절; 20장 18, 19절 참조).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이 가마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애굽기 19장 16~19절).이윽고 십계명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울려 퍼졌으며 넷째 계명에 이르러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20장 8절)고 외쳤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현존의 거룩하고 장엄한 표출에 의해 압도된 상황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들었으며 비로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것에 대한 관념을 마음과 몸으로 체득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백성들의 목전에서 시내 산 위에 강림하실 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을 영접하기 위해 스스로 거룩하게 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19장 10, 11절 참조).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거룩하게 했는가? 첫째는 자기 자신을 청결하게 하고 옷을 빨았으며(10, 14절 참조).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뒤덮여 있는 시내 산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시내산 둘레에 경계를 세워(12, 23절 참조) 자신들을 경계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서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초청을 받고 구름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현존의 거룩하고 두려운 위엄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되면서 그 의미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 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에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다(24장 15~18절).
 대부분의 구약학자들은 하나님이 자기 앞으로 모세를 부른 “제칠일”이 다른 날이 아니라 안식일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은 안식일에 모세에게 자신의 거룩한 현존을 직접적으로 나타냄으로써 창세 때 하나님이 안식일을 어떻게 거룩하게 하셨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었다. 안식일의 거룩함은 하나님이 그날에 부어 넣은 어떤 마술적 요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그리고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을 말하는 것이었다.
 안식일의 거룩함의 의미는 출애굽기 31장 13절에서 좀 더 강력하게 표현되고 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에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여기서 안식일의 거룩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현존(함께 계심)으로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비로소 창세 때 안식일이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신비가 밝혀진 것이다. 안식일이 거룩하게 되는 신비의 핵심은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를 완성하는 마지막 행위로 그 세계에 자신의 현존을 부여한 것이었다. 창조의 6일 동안에는 하나님이 이 지구를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과 살아 있는 피조물로 가득 채웠으나 제칠일에는 자신의 거룩한 현존으로 지구를 가득 채우셨던 것이다. 안식일을 통해 약속된 생명의 축복과 행복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의 현존이었던 것이었다.인간은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행할 때만 진정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반면 하나님의 현존으로부터 분리될 때 인간의 생명은 덧없는 그림자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다윗이 죄를 지은 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나를 주 앞에서(주의 현존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편 51편 11절)라고 부르짖었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이 진실을 통절하게 인식하였을 것이다.

 안식일과 성막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출현
 하나님에 의해 안식일이 거룩하게 되는 신비가 밝혀지는 출애굽기에서는 안식일과 성막이 차례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에 의해 거룩해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현존에 의해 거룩해지는 이 현상에 의해 안식일과 성막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처음에 안식일에 구름 모양으로 나타났다가(출애굽기 24장 15, 16절 참조) 나중에 성막으로 이동하였다(40장 33절 참조). 모세가 성막 만드는 일을 다 마쳤을 때,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사 모세가 회중의 장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34절 참조). 창세 때 이루어진 안식일의 거룩함이 광야에서 성막의 거룩함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제칠일에 친림하여 제칠일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창조 사업을 마무리하였듯이 성막을 거룩하게 할 때도 같은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성막에 친림하여 자신의 현존을 드러냄으로써 그 공간이 하나님의 성소로 완성되고 낙성되었음을 인증했던 것이다(34, 35절 참조).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현존을 통해 안식일과 성막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이 둘을 거룩함의 고리로 서로 연결시킨 같은 방식으로 성소와 성도들을 거룩함의 띠로 연결시키고 있다. 안식일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다.”라는 하나님의 선언을 대대에 걸쳐 보증하고 있는 것처럼 안식일에 하나님의 현존에 의해 거룩하게 된 성막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신다.’(출애굽기 25장 8절; 29장 45절 참조)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증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에 성막 위와 성막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있어서 개인적으로 체험해야 하는 신앙적 필요이기도 하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성소를 공경하는 것은 성도들의 이같은 신앙적 체험을 말하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그리고 안식일에 성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이 신자들 개개인에게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실재가 될 수 있다는 자각때문에 유대인들은 성소를 유린당하고 사로잡혀 간 바벨론 땅에서도 계속해서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신약의 그리스도인들도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장 20절)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에 힘입어 교회당이 없는 지역에서 안식일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성소가 안식일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안식일은 시간의 성소가 되고 성소는 공간적 제한을 벗어나는 차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성막의 원형이신 그리스도
 성소는 장차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거하실 최종적 처소를 상징했으며, 이 같은 성소의 상징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실재가 되었다. 예수의 탄생에 즈음하여 하나님의 천사는 태어날 아기의 이름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을 가진 “임마누엘”로 일컬어질 것이라고 말했다(마태복음 1장 23절).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시는 궁극적 처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었다. 또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2장 19~22절에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는데 요한은 그때 예수님이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석했다(21절). 그리고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한다’고 증언하였다. 구약 시대에 성막가운데 거하시던 하나님이 이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로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에베소서 1장 22, 23절 참조) 가르쳤을 뿐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린도전서 3장 16, 17절)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성소를 공경하는 것은 예배의 공간을 공경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공경하는 것이며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성소를 공경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안식일 신앙 안에 성소 신앙이 있고 성소 신앙 안에 안식일 신앙이 있다. 안식일 신앙 안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신앙이 있고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 안식일 신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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