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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오만규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대해 어떤 모범을 남겼는가?
 

 

 앞에서 몇 차례에 걸쳐 신약 성경의 복음서들을 통해 안식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모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대해 무엇이라 가르치시고 모본을 보이셨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을 폐하신다고 말씀하신 일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셨던 것은 유대교의 구전적인 전통이 규정한 여러 가지 규칙으로부터 안식일을 해방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안식일의 본래적인 축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이해하는 태초의 안식일은 사람들이 영적인 자유를 누리는 날이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봉사하는 날이었다. 그는 안식일에 병자들을 치료하셨으나 이 같은 행위들은 모두 안식일의 정신과 일치하는 거룩한 봉사들이었다.
 안식일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떻게 순종하고 전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지만 이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가르쳐 지키게 한”(마태복음 28장 18~20절) 사람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부터 사도 요한이 세상을 떠난 1세기 말까지의 기간을 그리스도 교회 역사상 특별히 사도 시대라고 구별하여 일컬으면서 교회와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를 다룰 때는 언제나 사도들이 전하고 가르쳤던 사도시대의 사례들을 규범적인 준거로 삼아 존중해 왔던 것이다. 16세기의 개신교 종교 개혁이 “사도 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 아래 이루어진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라 할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사도들의 안식일관
 신약 성경 중에서 사도 시대의 신앙과 실천을 후대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대표적인 기록이 <사도행전>이므로 안식일에 관한 사도들의 증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이 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안식일이라는 뜻의 희랍어 “삽바톤”이 등장하는 경우는 모두 10회인데 그 첫 번째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감람 산이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사도행전 1장 12절)는 언급이다. 그다음 하나는 이방인 출신 신자들에게 어떤 신앙 윤리를 가르쳐야 하는 문제를 토의했던 예루살렘 총회(사도행전 15장 21절)에서 야고보가 안식일을 언급한 것이며 나머지 8회의 경우는 모두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과 관련된 것들이다. 바울의 선교지 중에서도 네 지역, 즉 비시디아 안디옥(사도행전 13장 13~52절), 빌립보(사도행전 16장 11~15절), 데살로니가(사도행전 17장 1~9절), 고린도(사도행전 18장 1~4절)에 교회를 세우는 일과 연관되고 있다. 그래서 먼저 바울의 선교와 관련되어 언급된 안식일의 사례들을 살펴본 다음에 예루살렘 총회에서 야고보가 안식일을 언급한 경우를 검토하고자 한다.
 바울과 관련되는 안식일의 사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의 하나는 그는 심지어 이방 세계에서 선교할 때도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자주 유대의 회당에 참석하였고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회당을 찾아온 그 청중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이다(사도행전 13장 14절; 16장 13절; 17장 2절; 18장 4, 19절). 안식일의 회당 출석과 회당 설교가 함께 연결되는 최초의 경우는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참석하여 “회당장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만일 백성에게 권할 말이 있으면 말하라”는 권고를 받고 바울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경우이다(사도행전 13장 14~41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현상은 바울과 바나바가 충성스러운 안식일 준수자로서 이방 땅에서 선교하면서도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갔다는 것이고 그 회당의 참석자들 중에는 이스라엘 사람들 외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이방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단순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충성스러운 안식일의 준수자이기 때문에 안식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회당장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이미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수용하는 일에 있어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문제를 부담으로 느껴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바울은 실라를 대동하고 제2차 선교 여행을 나섰는데 “마게도냐 지경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에 도착하여 이성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다”(사도행전 16장 12절). 그리고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성문 밖 강가에 나갔다”(사도행전 16장 13절). 신실한 안식일 준수자였던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에서 이방 나라들에 선교하는 기간에도 안식일 예배를 위해 우선 그 지역에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는지를 탐문했고 그런 회당이 없는 경우에는 골짜기나 강가 같은 “안식일의 기도처”를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 기도처에서도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 여자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를 만나게 되어 그녀와 그 가족과 그 하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는데 그들은 이미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으므로”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는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갔으며 이후에도 두 안식일을 이렇게 했다(사도행전 17장 1, 2절).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로 알려져 있는데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러 안식일에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서술했다. 그리고 누가는 사도행전에서도 바울이 예수님처럼 안식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안식일에“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갔다고 서술했다.
 바울이 세 안식일을 머물면서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결과로 데살로니가에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사도행전 17장 4절).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방인 중심의 공동체로 성장한 사실에 대해 바울은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에 대해 스스로 말한다”고 썼다(데살로니가전서 1장 9절). 바울과 이방인들의 첫 번째 만남은 안식일에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이루어졌는데 그들에게도 안식일의 준수는 이미 바울의 경우처럼 “자기의 규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 중 아테네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경험을 치른 후에 고린도로 갔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평일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같은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생계를 위해 천막 만드는 일에 종사하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다”(사도행전 18장 1~4절),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가 재정을 마련하여 바울과 합류한 이후에는 안식일뿐 아니라 날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였으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반발로 더 이상 회당을 말씀을 강론하는 장소로 이용하지 못하고 그 대신 “회당 옆에 있는 디도 유스도의 집”을 이용하였다(사도행전 18장 6, 7절). 누가는 디도 유스도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또한 비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이었으며 안식일마다 회당 예배에 참가하는 안식일 준수자였는데 이제 바울로 말미암아 자신의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식일과 예루살렘 총회
 사도행전 15장에 소개되고 있는 예루살렘 총회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로 일색을 이루었던 초창기 그리스도 교회가 팔레스틴 지역과 유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교회에 비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수반된 문제는 기존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새로 들어온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어떻게 신앙 윤리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신앙윤리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 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여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윤리를 요구하지 말아야 하는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바리새파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사도행전 15장 1절)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면서 이방인 선교에 헌신해 왔던 바울과 바나바 등 이방인 교회 지도자들은 관점이 달랐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유대 율법의 멍에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총회는 상당한 토론끝에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이었던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메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 하고 이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지우지 않는 것이 옳다”(사도행전 15장 28, 29절)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면 이 같은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이 안식일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것은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시한 신앙적 지침들에 안식일 준수의 요청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은 예루살렘 총회가 더 이상 안식일 준수가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이 그러한가? 우리가 이 문제를 옳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시한 “우상의 제물과 목메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는 것”의 성격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예루살렘 총회는 위의 네 가지 금지규정을 구원의 기초나 교인 자격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지침들이 아니라 유대인들 사이에서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보편적인 금지 규정들이었다. 예루살렘 총회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신앙적 동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네 가지 금지 규정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결의했던 것이다. 이 금지 규정들은 유대인 사회에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것들이었던 반면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의 이교적 문화 배경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는 종교적 윤리 사항들이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사회에 편만한 우상 숭배와 살생과 음행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경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교 사회에 우상 숭배는 사회생활 전반에 편만해 있는 현상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시작한 이방인 출신 신자들은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중에도 우상의 제사를 위해 “목메어 죽인 것”을 멀리해야 했다. 만약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이교의 제사를 위해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게 되면 이교의 제사에 동참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그 같은 고기를 먹지 말라고 요구했던 것이다(레위기 17장 7~9절, 고린도후서 8장 1절). 또 피는 하나님께만 속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피를 멀리하라는 것은 곧 살인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결정한 것은 유대인들이 세 가지 중요한 범죄로 생각하는 우상 숭배, 간음, 살인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악행들은 당시 이교 사회에 특별히 만연되었던 악행들이었으며 따라서 이 악행들을 금지하고 있는 이 규정들은 중요한 윤리적 원칙들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들만으로 모든 기초적인 도덕률들이 대표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십계명은 이외에도 안식일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성 모독적인 언사, 부모에 대한 불효, 거짓 증언과 도둑질과 타인의 소유에 대한 탐욕등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인 야고보는 총회에 결론적인 제안을 제시하면서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사도행전 15장 21절). 앞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듯이 초창기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이미 회당의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고 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이나 바울처럼 이미 “자기의 규례대로” 안식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회당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며 예수님이나 바울이 그리스도교라는 새 신앙을 위해 이 규례를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았듯이 그들 또한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예루살렘 총회에서는 안식일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는데 이 사실은 그 뜻하는 바가 대단히 중대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총회에서 안식일 준수에 대한 논란이 없었던 것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의 준수를 “능히 메지 못할 모세의 율법”으로 여기지 않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계속적으로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과 똑같이 유대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여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윤리를 요구하지 말아야 하는가?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바리새파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사도행전 15장 1절)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면서 이방인 선교에 헌신해 왔던 바울과 바나바 등 이방인 교회 지도자들은 관점이 달랐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유대 율법의 멍에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총회는 상당한 토론끝에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이었던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메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 하고 이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지우지 않는 것이 옳다”(사도행전 15장 28, 29절)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면 이 같은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이 안식일 문제와 무슨상관이 있는가? 그것은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시한 신앙적 지침들에 안식일 준수의 요청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은 예루살렘 총회가 더 이상 안식일 준수가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과연 진실이 그러한가? 우리가 이 문제를 옳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시한 “우상의 제물과 목메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는 것”의 성격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예루살렘 총회는 위의 네 가지 금지규정을 구원의 기초나 교인 자격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지침들이 아니라 유대인들 사이에서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보편적인 금지 규정들이었다. 예루살렘 총회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신앙적 동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네 가지 금지 규정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결의했던 것이다. 이 금지 규정들은 유대인 사회에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것들이었던 반면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의 이교적 문화 배경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는 종교적 윤리 사항들이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사회에 편만한 우상 숭배와 살생과 음행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경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교 사회에 우상 숭배는 사회생활 전반에 편만해 있는 현상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시작한 이방인 출신 신자들은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중에도 우상의 제사를 위해 “목메어 죽인 것”을 멀리해야 했다. 만약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이교의 제사를 위해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게 되면 이교의 제사에 동참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그 같은 고기를 먹지 말라고 요구했던 것이다(레위기 17장 7~9절, 고린도후서 8장 1절). 또 피는 하나님께만 속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피를 멀리하라는 것은 곧 살인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결정한 것은 유대인들이 세 가지 중요한 범죄로 생각하는 우상 숭배, 간음, 살인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악행들은 당시 이교 사회에 특별히 만연되었던 악행들이었으며 따라서 이 악행들을 금지하고 있는 이 규정들은 중요한 윤리적 원칙들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들만으로 모든 기초적인 도덕률들이 대표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십계명은 이외에도 안식일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성 모독적인 언사, 부모에 대한 불효, 거짓 증언과 도둑질과 타인의 소유에 대한 탐욕등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인 야고보는 총회에 결론적인 제안을 제시하면서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사도행전 15장 21절). 앞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듯이 초창기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이미 회당의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고 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이나 바울처럼 이미 “자기의 규례대로” 안식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회당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며 예수님이나 바울이 그리스도교라는 새신앙을 위해 이 규례를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았듯이 그들 또한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예루살렘 총회에서는 안식일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는데 이 사실은 그 뜻하는 바가 대단히 중대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총회에서 안식일 준수에 대한 논란이 없었던 것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의 준수를 “능히 메지 못할 모세의 율법”으로 여기지 않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계속적으로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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